먹구름과 달리기 시합/김예린

영글어가는 여름

by 김예린

“우리 빨리 뛰어가면 저 먹구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오후 5시. 태국 북부 매홍손은 매일 같은 시간이 되면 먹구름이 스멀스멀 하늘을 덮었다. 파란 하늘이 반쯤 먹구름으로 가려지면, 장대비가 우수수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친구 메이와 나는 매일 열리는 매홍손 야시장에서 저녁 식사 거리를 사는 중이었다. 갓 튀겨낸 두부 튀김이 비닐봉지에 담길 때쯤 산등성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구름 속도를 보니, 비닐봉지 들고 뛰어가면 비 안 맞고 숙소에 도착할 수 있겠는데?’


그날따라 구름 속도가 거북이처럼 더뎠다.


‘달리기로 먹구름을 이겨 비를 맞지 않겠다!’


먹구름과 달리기 시합이라는 오만한 내 생각에 메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두부 튀김이 비닐봉지에 담기고, 노점 주인에게 돈을 건네며 ‘코쿠캅(감사합니다)’을 외쳤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숙소를 향해 뛰었다. 마음 같아서는 초원을 달리는 치타로 빙의해, 날쌔게 속도를 내고 싶었다. 다리를 열심히 휘적휘적했다. 손목에 낀 비닐봉지 속 두부튀김은 간장 소스와 춤췄다.


‘헉헉헉.’

금세 숨이 차 올랐다. 나는 달리며 흘끗흘끗 뒤를 바라봤다. 어릴 적 운동회에서 달리기 시합할 때는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걸 깨달았건만, 그걸 잊은 나는 무서운 속도로 내 뒤를 따라오는 검은 먹구름을 자꾸 쳐다봤다.


"쏴~아"


“졌다. 으하하.”


10분쯤 달렸을까? 먹구름은 나를 앞서 갔고 머리 위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몸이 홀딱 비에 젖었다. 나와 메이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며 비를 피해 건물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헐떡이는 숨은 턱까지 차 올랐는데, 나와 메이는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헉헉, 으하하, 이게 뭐야. 헉헉. 우리 진짜 바보 같다. 하하하하"


2006년 고등학교 3학년, 10월 수능 전 마지막 모의고사를 치고 가 채점한 시험지를 쓰레기통에 구겨 던졌다. 하교 길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정류장 앞 서점에 들어갔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카오산 로드가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인지 몰랐지만,

시험, 성적, 시험, 성적. 점수로 반복되는 일상을 책으로 벗어나고 싶었다. 지갑에 있던 만 원짜리 문화상품권을 꺼내 책을 샀다. 책장을 넘기며 난 엄마에게 “엄마, 나 대학생 되면 해외 배낭여행 갈 거야. 꼭 가게 허락해줘”라고 외쳤다.

대학생이 됐다. 아르바이트로 겨우 한 달 생활비 35만 원을 벌어 지내는 대학생에게 해외여행 갈 큰돈은 없었다. 얇은 주머니보다 더 큰 산은 엄마였다. 혈혈단신 해외로 여행 가겠다는 딸을 호락호락하게 허락해줄 엄마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IT 해외 봉사단 모집’


“지금이 기회다!”


기회가 눈앞에 나타났다. 2012년 대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고 메이와 냅다 신청했다. 운이 좋았고, 난 국가 세금으로 명분 있는 첫 타국살이를 시작했다.

태국 매홍손에서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소개했다. 사랑은 나와 아이들을 왔다 갔다 하며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이란 단어를 온몸으로 누렸다.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새로운 맛집을 찾아내는 소소한 일상도 행복에 추가됐다.

먹구름과 시합에서 쓴 패배를 맛본 뒤, 한낱 인간이 구름을 이기는 건 어림없는 일이라고 당연한 결론을 냈다. 조금이라도 하늘이 찌 뿌린 날은 고민 없이 숙소 바로 옆 쌀국수 가게로 향했다.

쌀국수 집 입구, 화구에는 우리네 곰솥 크기의 냄비 속에 육수가 항상 펄펄 끓고 있었다. 나는 환하게 웃었다. ‘사와디-카(안녕하세요)’ 외치며 식당 안 나무 의자에 앉았다.

동시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꾸어이띠아오!(쌀국수) 플리즈(주세요), “마이 팟치(고수는 안 줘도 됩니다.)”를 쩌렁쩌렁 욌다.

‘인사 잘하기’, ‘현지어로 말하도록 노력하기’ 이 두 가지는 이방인으로 태국에 살며 깨달은 지혜였다.


쌀국수면은 주문과 함께 펄펄 끓는 육수 속으로 담겼다. 음식점 주인아주머니는 1분도 채 안 돼 쌀국수면을 건져내 육수를 탁탁 털어냈다. 그릇 가득 면을 담고 육수를 부어낸 뒤, 숙주 한 줌, 소고기 고명 몇 점이 그릇 위에 올랐다. 쌀국수 한 그릇은 곧바로 내 앞에 놓였다. 식탁 위는 황설탕과 식초에 절인 매운 고추, 젓갈이 늘 있었다.

눈앞에 놓인 쌀국수를 취향껏 만들어 먹는 건 내 몫이었다. 나는 식초에 절인 매운 고추를 한 숟가락 가득 퍼서 쌀국수 위에 고명처럼 얹었다. 쌀국수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입안에 넣으면 그 끝에 딸려온 고추가 새콤하고 알싸하게 맛을 완성했다.

음식점 밖은 장대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목욕탕 냉탕에 있는 폭포수처럼 맞으면 아플 것 같았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잠시 감상하다, 빗줄기가 만들어 내는 바람에 몸이 오돌오돌 떨려 오면 뜨끈한 쌀국수 국물을 들이켰다. 국물은 식도를 따라 흘러 들어가 위 안에서 머물며 몸을 데웠다.

9년이 지났다. 매홍손에서 스물다섯의 나는 사진 속에서 하회탈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고구마 줄기를 뽑으면 주렁주렁 올라오는 고구마처럼, 장대비가 내리면 기억 조각들이 줄지어 올라온다. 무모했던 먹구름과 시합,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먹던 쌀국수 한 젓가락이 쌓여 오늘의 내가 됐다는 걸 바라본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다 한국의 태국 식당서 쌀국수 한 젓가락을 후루룩 삼킨다. 추억을 야금야금 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