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코끝에 추위가 채 가시기 전, 이른 봄날이었다. 2년간 진한 연애 끝에 우리는 마침내 결혼이란 걸 했다. ‘사랑’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수줍은 웃음이 새어 나오고, 둘만의 사랑을 발판 삼아 어떤 역경도 헤치고 나갈 듯 견고한 믿음으로 서로를 맞이했다. 서론이 길다. 그땐 그랬다.
봄날, 봄처녀가 시집을 가던 날은 참 많은 사람이 모였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도 제사 한 번 거르지 않고, 온 식구를 초대해 명절 음식 나눠 먹던 장손, 아빠의 지인들로 넘쳐났다.
사는 게 바쁘면 다른 이의 경조사에 소홀할 수 있는데, 아빠는 그걸 부끄러워했다. 아빠는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전부였다. 덕분에 아빠가 초대한 사람들이 식장을 메웠다. 사람 좋아하는 거로 유명한 내 지인까지 더하니 결혼식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를 끔찍이 사랑했던 (시제가 중요하다) 그날 남편은 지인을 총동원해 뮤지컬 중 한 곡을 무대에 올렸고, 딸내미를 제 분신처럼 여기던 엄마는 그동안 ‘이 결혼 결사반대!’를 외쳤다는 진짜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애써 너그러운 척했다.
봄처녀는 어르신들에게 많이 혼이 났다. 결혼식에서 너무 많이 웃었다는 게 이유였다.
“너는 그렇게 좋으냐? 너 떠나보내는 엄마 아빠는 생각도 안 하냐?”
신경 써서 들었으면 벌써 기분이 상했을 잔소리들도 마냥 듣기 좋은 소리로 들렸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지. 이미 내 눈에는 콩깍지가 씌었고, 벗길 생각조차 안 했으니까. 홀어머니의 외아들이면 뭐 어때!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만 보고 직진했다. ‘내가 어떻게 한 결혼인데’ 하고 쓸데없이 강인했다. 휴, 그땐 그랬다고. 회상한다.
작은 월세 집을 신혼집으로 정하고 꿀 같은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친정에서 받아온 반찬들은 이 세상 봄이 다 들어 있는 봄나물로 가득했다. 나중에 직접 해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물은 절대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웬만한 요리 하나 만드는 만큼 손이 갔다. 세척도 어렵고, 데쳐내는 시간도 적당해야 한다. 나물 종류별로 그 시간도 모두 다 다르다. 어떤 양념을 하는지에 따라서 추가되는 시간도 제 각 각이다. 그런 정성을 들여 이 많은 반찬을 만들었다니... 만드는 내내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짐작할 수도 없는 그 마음은 자식을 낳고서야 어렴풋이 알게 됐다. 역시 사람은 어리석은 동물이다. 어릴 적은 엄마의 시간을 모르고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봄 처녀티를 막 벗기기도 전에 아이를 가졌다. 따뜻한 봄날에 가진 어여쁜 아이였다. 봄에 가진 아이가 겨울 끝에 태어났고, 친정엄마의 사랑을 알아채기도 전에 그 작은 걸 낳고 날마다 우당탕탕 호들갑을 떨며 키워냈다. 엄마가 만들어준 봄나물은 엄마이기에 가능했다는 걸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면서 또 느꼈다. 고작 이유식 한 끼를 만들기 위해 온갖 조리도구를 꺼내 주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나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단 걸 말이다.
참 부지런히 도 사랑했다. 10년도 채 안 됐는데, 벌써 세 아이의 부모가 됐다. 내 품에서 나오는 사랑을 세 아이와 남편, 함께 사는 시어머니에게 나눠주는 게 벅찰 때도 있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두 번째 엄마나 마찬가지인 시어머니는 남편을 한없이 따뜻한 아빠로 키워주신, 남편과 함께 찾아온 봄날의 귀인이다. 표현이 서투셔서 그렇지,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이 당신께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며칠 전 막내 생일을 보내고 나니까 겨울이 멈췄다. 겉옷을 입지 않고 놀이터를 뛰놀아도 땀이 삐질 흐를 만큼 따뜻해졌다. 봄의 기운이 찾아왔으니, 봄을 느끼게 해 줄 차례다. 우리 아이들은 과연 봄나물을 먹을 수나 있을까. 냉이 향이 나는 된장찌개는 먹을까? 첫째가 좋아하는 된장찌개에는 두부를 잔뜩 넣어야겠다. 고기를 좋아하는 둘째한테는 미나리를 싸서 줘 봐야지. 막내 너는 그냥 패스할래. 뭐든 잘 먹는 아이니까.
뭣도 모르고 설레기 바빴던, 봄처녀였던 내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중심이 나에게서 아이에게로 옮겨간 것 이외엔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삶이고, 생활이고, 전쟁이다. 그 속에서 적당히 나를 지키면 된다. 잃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다시 봄이 오듯, 그렇게 또 나에게로 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