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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Oct 22. 2021

우리 모두 꼰대가 된다/백지혜

익어가는 가을

작년이었나. 웹 드라마 한 편을 본 적이 있다. 대학생 청춘 로맨스 물이었는데, 내가 그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도, 인물도 아닌 주인공의 대사 한 마디였다.


 “줄 이어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던 여름 낮. 싱그러움이 그득하게 베인 공원 벤치에서 남자 주인공이 건네고 곧이어 줄 이어폰을 받아 든 여자 주인공이 내뱉은 말이다. 그 말투는 마치 오래전 유물을 마주하는 시선과 함께였다.


때까지만 해도 나는 가방에만 넣으면 금세 엉켜버리는 줄 이어폰을 쓰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음악을 들으려 귀에 꽂으면 움직일 때마다 물에 닿고 싱크대 손잡이에 걸려버리는 귀찮기만 하던 그 줄 이어폰 말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이 너무 자연스러운 이 시대에 그래도 줄 이어폰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줄 이어폰의 음질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하고.


 너무나도 당연하던 내 일상이 드라마 대사에서도 언급될 만큼 촌스러운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최근 남편이 들고 들어온 에어 팟 때문이었다. 아이폰으로 바꾼 지 6개월 만에 에어 팟의 신세계에 입성했다. 편안함과 신박함은 물론, 우려하던 음질 문제는 걱정 축에도 들지 않았고, 감탄에 감탄을 더할수록 에어 팟은 이제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다.


이제 막 말문을 틔우는 막내 입에선 얼마 전 “허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세 살배기 꼬맹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만큼 최근 몇 년 사이 와르르 쏟아지는 신조어들은 세대 들 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어울리지 못하는 내 언어들은 잘못 하나 없는데도 보기 좋게 팽 당하는 기분까지 든다.

시간이 점점 나를 지금과는 다른 세대의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미 옛날 사람의 대열로 들어선 나는 의도치 않게 ‘꼰대’가 되어버린 경험도 있었는데, 상황은 이랬다. 티타임 중에 인턴들과 벽걸이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내용인즉슨 날이 갈수록 여성의 불임과 난임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얘기였다. 어린 인턴들에겐 너무나 먼 이야기인, 결혼과 출산 과정을 생생하게 겪은 것도 모자라 다산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던 나는 그냥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단지 그 이유뿐이었다. 그래서 나온 첫마디가


 “너네들 생리는 주기적인 편이야?”


 지극히 사적인 문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놓고 물어보는 날 인턴들은 얼마나 이상하게 봤을까. 속으로 엄청 하진 않았을까? 한껏 놀란 눈치였지만, 띠 동갑을 훌쩍 넘긴 작가님이 물어보는데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인턴들은 순순히 하나 둘 자신의 생리주기를 알려주었다.


 여기서 끝냈어야 했다. 그랬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꼰대의 정점을 찍은 난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한 술 더 떠서 장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젊을수록 건강을 아껴야 해. 나이만 믿고 까불다가 큰일 나. 난임이니, 불임이니 하는 뉴스 봐. 이게 남의 문제가 아니라니까? 아 이 낳을 생각 있으면 술도 적당히 마시고 절대 담배는 피우면 안 된... 악!!!!!!!!!!”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화였다고 생각하던 내 입을 틀어막은 건 그나마 남아있던 한 조각의 제정신이었다.


 “미... 미안해... 나 너무 꼰대 같았지?”


 '그걸 이제야 묻냐?'

 라는 눈빛으로 어쭙잖은 대답을 이어나가는 한 인턴이 이번엔 아예 쐐기를 박는다.


 “아~ 괜찮아요. 작가님. 오천 년 전 이집트에 있는 피라미드 안에 그려진 벽화에는 그런 말이 적혀 있데요.

 ‘요즘 젊은이들을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라고요.”


 ‘내가 꼰대’ 임을 확실히 깨달아서 누구보다 사색이 되어 있는 내게 조곤조곤 설명으로 팩폭을 날렸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작가님) 누구나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된다는 얘기예요”


시간들에게서 차근차근 배운 지혜들을 지나가는 농담쯤으로 넘겨버리는 세대들이다. 20대인 인턴들도 이런 반응인데, 10대에도 들지 못한 내 자식들이라고 다를까. 그저 내 말은 의미 없이 흘러간 이야기, 잔소리 취급을 받을 상상을 하니까 갑자기 살맛이 안 난다.


삶의 경험치다. 몸소 겪고 피부로 알게 된 나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보물 같은 조언들이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내 피와 살 같은 이야기란 말이다. 그런데도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이집트 피라미드 속 전설이라니... 눈치 하나 안 보고 할 얘기 다 해버리는 저 신선하고도 새파랗게 푸른 정신을 보라. 너는 이미 진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저지른 만행도 떠올려본다. 나와 같은 순수한 의도에서, 오로지 나를 위해 하셨던 부모님의 말씀들을 내동댕이쳤을까. 왜 그들을 철저하게 ‘꼰대’로 묶어 버렸나 말이다. 기가 찬다. 코도 찬다. 멍해지는 것 이외에는 따로 할 말이 없었던 내게 시간이 얘기한다.


괜찮아, 우린 모두 꼰대가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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