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목이 말라, 떠지지 않은 눈을 찡그리며 물 마시러 안방에서 나왔다. 찡그렸던 눈을 반쯤 떠서 시계를 보니 오전 3시 30분이다. 창문 밖 밤하늘에는 별들이 짙은 어둠을 뚫고 빛을 뿜어댔다. 잠에 취해 무거웠던 눈이 번쩍 떠졌다. 한참을 창문 앞에 서서 민트처럼 시원한 밤공기를 들숨 날숨으로 받아들였다. 제자리에서 반짝이는 별을 바다보다, 별들이 지난 8월과 9월 만났던 <김해문화인물> 인터뷰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황홀’, ‘존경’. 두 달간 내 마음에 들어왔던 단어다. 첫 인터뷰에서부터 마지막 인터뷰의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과정은 똑같았다. 스마트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인터뷰 일정을 정하기 위해 거는 전화 통화 연결음 소리에 내 마음이 진동했다. 인터뷰는 짧게는 한 시간, 길면 세 시간이 걸린다. 이 시간 동안 한 사람 과거를 농축해서 듣는다. 귀로 듣고 손으로 자판을 피아노 치듯 부지런히 움직여 기록한다. 한 문장에 한 사람의 10년간 발자취가 담긴다.
어떻게 써야 할까. 커서만 깜박이는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다 겨우 한 자씩 찍어 넣어본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읽기 편하게 쓰자. 이것을 목표로 삼았다. 진솔한 이야기는 마음을 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는 길은 소개팅을 나가는 것처럼 마음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인터뷰하는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삶이 내게 다가왔다. 돌아오는 길은 건강한 피를 수혈받듯 건강한 생각과 에너지를 온몸 듬뿍 받았다.
인터뷰이가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오랜 시간 걸어온 분야는 생태교육, 놀이, 연극, 음악, 문화예술교육, 제과제빵 등 다양했다. 세상과 싸우며 마주한 현실들, 사람과 부딪히며 넓어진 이해심들, 자신의 분야를 무시당하며 견고해진 마음들.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며 ‘세상은 무엇이다. 사람은 무엇이다.’하고 고치고 다듬은 생각들. 그들은 ‘역경’, ‘고난’, ‘한계’라는 단어로 치환되는 마음의 생채기를 다시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다독였다.
인터뷰이들은 지나온 길로부터 쌓아온 상념과 경험으로 삶의 맥락을 조금씩 넓혀갔다. 그들은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무같이 흔들림이 없었고, 비와 바람에 흔들리고 부러진 나뭇가지 자리에 새순이 자라듯, 인터뷰이 마음에는 매일 새 마음이 자랐다. 그렇게 생을 일군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새 마음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고, 눈빛이 반짝였다. 이야기를 듣는 나의 마음이 간질거리며 덩달아 설렜다. 인터뷰이의 과거와 오늘, 미래를 들으며 나는 황홀했고, 그들을 존경했다.
‘음악이주는선물’ 이지현 님과 ‘예닮’ 이민경 님, 문화예술단체 ‘띠앗’ 이은경 님은 문화가 공기처럼 일상생활에 스며든 문화도시 김해를,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정진영 님은 자연이 아름다운 김해를, 대동무궁화연구원 이철희님은 무궁화가 핀 김해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귀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쓰다 보니 한 가지 교집합이 보였다. ‘오지랖이 넓다.’
오지랖은 윗옷의 앞자락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윗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안에 있는 다른 옷을 감쌀 수 있다. 이처럼 사람도 무슨 일이나 말이든 앞장서서 간섭하고 참견하는 걸 비유해 오지랖 넓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간섭’과 ‘참견’ 없으면 발전은 없지 않을까. 이 말을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으로 쓰임새를 바꾸고 싶었다. 쓰임새를 바꾼다면 김해문화인물의 부제는 ‘오지랖 넓은 사람들 이야기’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더 나은 김해를 만들고 싶은 그들의 오지랖 덕분에 내가 사는 김해가 다채로운 색깔의 문화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이 재산이다.’ 상투적인 문장은 우리가 ‘사람’이라는 재산을 진짜 금은보화 다루듯 소중히 다루고 있을까?‘ 하고 반문하게 만든다. 김해문화인물에 소개된 사람들, 올해 소개되지 못하고 제 분야에서 열심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모두 김해의 재산이다.
김해의 소중한 재산 목록을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어 기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읽는 당신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길, 마지막 페이지를 읽은 뒤 그들의 건강한 생각들이 당신에게도 진하게 전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