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린 Mar 22. 2021

오늘도 놀이터에서 '이걸' 줍습니다

사방 곳곳 흩어진 비비탄 총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플라스틱

“엄마, 이게 뭐야?”


놀이터에서 뛰놀던 아이가 집게 손으로 집어 든 건 6mm 플라스틱 비비탄 총알입니다.

미끄럼틀과 시소 사이를 뛰어다니며 비비탄 총을 쏘던 초등학생들의 흔적입니다.


“형들이 총쏘기 놀이할 때 쓴 거야. 음, 근데 이게 빗물을 타고 하수구로 들어가면, 강과 바다로 흘러갈 거야. 총알이 너무 작으니까 물고기가 먹이인 줄 알고 배탈이 나겠지?”


“응, 맞아. 상어도 거북이도 쓰레기를 먹고 배탈이 났어.”


“그래, 그럼 우리 비비탄 총알 줍기 놀이할까?”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 프로그램에는 상어, 거북이 등 해양동물이 플라스틱과 비닐을 먹고 아픈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아이는 만화 프로그램 내용을 떠올리며 제 설명을 이해했습니다.

세 살, 네 살 아이 둘이 땅바닥에 숨겨진 보물을 찾듯 비비탄 총알을 찾습니다.

비비탄 총알은 화단, 미끄럼틀, 시소 아래 등 곳곳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15분 동안 아이들이 조막만 한 손으로 주운 비비탄 총알이 제 손안에 가득 찼습니다.


“엄마, 이제 총알 더 없는 것 같아. 그만 줍고 미끄럼틀 타자.”


“총알 줍느라 애썼어. 이제 물고기들이 비비탄 총알 먹는 일은 없을 거야.”


바닥에 흩어져있었던 비비탄 총알이 눈에 더 보이지 않자, 아이들은 그제야 미끄럼틀 계단에 오릅니다. 며칠 뒤, 어린이집 하원 길에 아이가 가던 길을 멈춥니다. 보행로 곳곳에 비비탄 총알이 굴러다닙니다.


“엄마, 여기 총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우리 마트 가야 하는데.”


비비탄 총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아이들이 총알 줍기에 나섭니다. 아이는 비비탄 총알을 모아 제 손에 얹어줍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비비탄’을 적어봤습니다.


‘비비탄 500발 4천650원’, ‘비비탄 총, 알 세트 8천950원’


1만 원이 되지 않는 돈으로 비비탄 총과 알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비탄 총알을 만드는 회사도, 비비탄 총알을 사서 아이에게 장난감 총을 쥐여준 어른도, 장난감 총을 가지고 논 아이들도 누구 하나 버려진 비비탄 총알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쪼그려 앉아 비비탄을 줍는 모습을 보다가, ‘애들아, 그만 줍고 그냥 가자’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려다 다시 삼킵니다. 비비탄 총알이 빗물을 타고 흘러 어디로 갈지 눈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가져온 비비탄 총알만 받고 서 있다. 저도 아이들과 함께 비비탄 총알 줍기에 나섭니다.


“엄마도 같이 주울게, 얼른 총알 줍고 마트에 젤리 사러 가자.”


오늘도 저는 아이와 함께 쪼그려 앉아 비비탄 총알을 줍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