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예린 Mar 24. 2021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탔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병원까지 걸어서 약 20분 약 1.3km 거리입니다. 버스를 타면 3정거장,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죠. 그날따라 아이를 유모차를 태워 오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져, 버스정류장 앞에 섰습니다. 정류장에 선지 5분 만에 버스 한 대가 섰죠. 앞문을 여는 버스 기사님에게 물었습니다.

“기사님, 유모차도 탈 수 있나요?”
“한 번 타 보이소!”

저는 저상버스를 탔습니다. 저는 기사님이 당연히 저상버스에 장착된 리프트를 내릴 줄 알았습니다. 몇 분이 지나도 리프트는 내려지지 않았고, 저는 눈치껏 14kg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들고 앞문으로 탔습니다. 유모차 무게가 9.5kg임을 고려하면, 총 23.5 kg를 양손으로 들었습니다. 저상버스 안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공간은 ‘임산부 전용 좌석’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휠체어나 유모차를 고정 할 수 있는 잠금장치도 찾아볼 수 없었죠. 저는 유모차를 유모차 자체 고정 장치를 누르고, 불안한 마음에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 손잡이를 있는 힘껏 잡았습니다. 두 정거장이 지나고, 목적지가 다가와 버스에서 내려야 했죠. 뒷문이 열렸습니다. 저는 크게 외쳤습니다.

“기사님, 리프트 내려주세요.”

그렇게 두세 번을 외쳤지만, 기사님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버스 안 승객 눈치가 보여,

더 리프트 작동을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유모차를 양손으로 들어 보행로에 내렸습니다. 흔들리는 버스 안 아이는 불안했는지, “무서웠어”라고 말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유모차 타고 버스는 못 타겠다. 엄마가 생각이 짧았어. 미안해. 무섭게 만들어서”라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번 요청에도 내리지 않는 리프트, 잠금장치를 찾아볼 수 없는 버스 안.
‘원래 저상버스는 교통약자를 위한 버스가 아니었나?’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김해시에 문의했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저상버스를 이용했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리프트를 내려주질 않던데, 저상버스는 원래 리프트가 있지 않나요? 행여 리프트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지자체에서 리프트 작동 지침이 있거나 정기검진을 하나요?”


이에 대해 김해시는 “버스 업체에서 유모차 동반 승객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다음 이용 시 이용객이 원하면, 유모차 이용 시 리프트를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또 휠체어 고정 장치는 유모차에 고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시에서 저상버스 리프트 작동 지침이나, 이렇다 할 관리 지침은 없습니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다시 의견을 냈습니다.


“엄마들이 안전하고 편하게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유모차 잠금 장치 마련, 리프트 작동 지침 등 필요해 보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에 시는 “이는 종합적으로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입니다. 일단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말했습니다.


저상버스만 늘리는 게 교통약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교통약자의 대중교통 이용 현실을 마주하자, 자연스레 스웨덴, 독일 등 유럽 교통선진국이 떠오릅니다. 유럽은 한국보다 앞서서 교통약자를 위한 버스를 만들고 도입했지요. 이를 따라가고자 국토교통부 등 정부와 지자체는 저상버스 보급률을 꾸준히 늘리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경상남도는 타고 내리기 좋은 저상버스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18년부터 21년까지 저상버스 598대로 늘려 시내버스 등록 대수의 32%를 저상버스로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4년간 총 936억 원입니다.
하지만 저상버스만 늘리는 게 답일까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에 따르면,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합니다. 영유아를 동반한 유모차 이용자가 저상버스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건 당연한 권리입니다.
또한 교통약자법 14조에 따르면,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약자에게 승하차 시간을 충분히 줄 것’, ‘교통약자에게 승하차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는 법의 문구로만 명시돼 있지, 현실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버스업체에서 “유모차 동반한 버스 승객은 처음”이라는 말처럼, 버스 안에서 유모차를 동반하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교통약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죠.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해 보급한 저상버스의 리프트 작동 여부를 관리 감독하지도 않는데, 버스 회사서 쓸 일이 없는 리프트를 자체 점검하긴 할까요?
버스 기사님이 “리프트 내려달라”는 저의 외침을 무시한 이유도, 리프트가 작동하지 않거나, 내리는 방법을 모르셨을지도 모릅니다.
각 시∙도 지자체장이 저상버스 대수만 늘렸다고 교통약자의 이동권이 확대 됐다고 말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지자체의 예산을 투입해 저상버스를 늘렸다면, 저상버스가 잘 작동하는지, 저상버스를 실제로 이용하는 교통약자의 불편함은 없는지 살피는 것 또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입니다.

저는 ‘저상버스는 편리함과 안전성이 당연히 확보돼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현실을 겪어본 저는 앞으로 다시 아이의 안전을 담보로 유모차를 끌고 버스 탈 생각이 없습니다.
오늘도 거리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엄마들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유모차를 밉니다.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탈 수 있는 세상이 오긴 할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놀이터에서 '이걸' 줍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