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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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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린 Aug 09. 2021

식은 밥은 왜 엄마 몫이야?

5년 전 명상센터를 찾았다. 거리에 반짝이는 트리 조명과 캐럴이 흥겹게 울려 퍼지던 연말연시. 명상센터는 참가자의 들숨 날숨 소리만 오갔다.

내 앞에 성인이 누워도 남을 정도로 큰 종이 한 장이 놓였다. 종이 위에 눕자. 나와 마주 앉은 짝이 색연필로 내 몸을 따라 선을 그려줬다. 그곳에 내가 생각하는 나를 그려 넣으라 했다. 색연필을 집어 든 나는 선 위에 나를 채워 넣었다.

뾰족하고 오뚝한 콧날, 자로 잰 듯한 똑 단발, 검은 정장 재킷을 입고 손에 서류 가방을 들었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였다.


‘일 중독자? 커리어우먼인가?’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즐거웠던 일과 화났던 일을 써보세요.”


한 해를 되돌아봤다. 직장 상사와 갈등, 나를 향한 질책. 눈을 감고 기억 조각을 끄집어낼수록 마른침을 삼키기 어려웠다. 명상센터 지도자가 내 앞에 다가왔다. 눈을 감았지만 떠 있던 귀로 그의 몸짓을 읽었다. 그는 내 그림을 보고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았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까지 정말 잘해왔는걸.”


따뜻한 온기가 내 등을 쓸어내렸다. 무너졌다.

소매 끝으로 연신 눈을 닦자 이내 소매 끝이 축축해졌다. 시간의 태엽을 감아 되돌려보면 나를 한 번도 안아준 적 없는 나였다. 내게 ‘수고했어’라고 말해주지 못했었다. 목표를 이룬 내게는 남을 갖다 댔다.


‘이것으로 모자라, 나보다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것 가지고 되겠어?’


실패를 한 날에는 누구보다 매몰차게 나를 대했다.


‘어이구, 헛똑똑이, 속은 빈 깡통. 열과 성을 다해서 하긴 했니, 대충 하니 결과가 이 모양이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나는, 남과 나를 끝없이 비교하고 질책했다.


식구가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할 때, 식탁 위는 엄마가 새 밥을 하기 전 덜어놓은 식은 밥이 무명천으로 덮여있었다. 김이 폴폴 나는 갓 지은 밥은 엄마를 제외한 식구들 입으로 들어갔다. 손을 뻗어 식은 밥을 가져가려 하자, 엄마는 손사래 쳤다.


“엄마, 내가 식은 밥 먹을게.”


“아냐, 됐어. 식은 밥 먹고 새 밥 더 먹으면 돼.”


나는 못마땅했다. 식은 밥은 왜 늘 엄마 차지인지. 식탁에서 그게 왜 자연스러운 건지. 식은 밥을 한 숟갈 떠서 먹는 엄마를 보며 ‘난 저렇게 하지 않을 거야’ 하고 그 모습을 마음에 꾹꾹 새겨 넣었다.


나도 결혼했다. 엄마가 됐고 신랑보다 요리를 더 잘하는 내가 주방 일을 맡았다.

삼시 세 끼를 챙겨 먹고 나면 밥솥 안에 항상 밥이 한 주걱씩 남았다. 남은 밥은 반찬 그릇에 담아, 옮겨 냉동실에 뒀다. 새 밥을 지으면 냉동실에 있던 밥을 꺼내와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데운 밥은 새 밥 위로 털어 넣었다. 주걱으로 갓 지은 밥과 냉장고에 있던 밥을 휘휘 섞어 버무렸다. 밥알이 고루 섞여 새것과 지난 것은 구분하지 못했다. 밥은 공평하게 식구들 앞에 놓였고, 숟가락 가득 올려진 밥알들이 허기진 배를 채웠다.


엄마와 마주 앉아 외식하던 날, 엄마에게 지난날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나는 엄마만 식은 밥을 먹는 게 참 싫었다.”


“왜?”


“식은 밥은 당연히 엄마 차지가 되는 게 못마땅했어. 엄마도 갓 지은 밥을 먹을 자격이 있잖아. 나는 남은 밥은 냉동실에 뒀다가 데워서, 갓 지은 밥 위에 부어 버무려버려. 명상센터를 다녀와 보니 내가 나에게 ‘잘 살아줘서 고맙다. 수고했다’고 한 적이 없더라. 결과가 어찌 됐든 가장 애쓴 건 나잖아. 난 나를 소중히 하기로 했어. 갓 지은 밥과 지난 것을 섞어 식구들이 함께 먹는 것. 사소하지만 나를 소중히 하는 작은 실천이야. 엄마도 식은 밥은 더 안 먹으면 좋겠어.”  


엄마는 스물다섯에 한 가정을 이뤄 두 아이를 낳았다. 엄마는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30년간 쉬지 않고 일했다. 묵묵히 삶을 이어간 엄마가 자신을 소중히 여겼으면 했다. 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도 요즘 나를 위해 목욕탕 가서 경락 마사지받아. 한 번 받는데 3만 원이 들어. 처음에는 사치 같았는데 ‘내 몸을 내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챙겨?’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나를 소중히 하려고 애쓰고 있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 세대는 나보다 자식 챙기기가 당연하고, 나를 먼저 챙기면 손가락질받던 시절을 살았어. 나를 소중히 여기기가 익숙하지 않아.”


“알아, 그래도 엄마 역시 자신을 사랑할 가치가 있어.”


“딸, 네 말이 맞아. 노력해볼게."


"응, 엄마. 누구보다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소중히 해야 하는 거야. 스스로 행복해야 남을 위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마음의 방이 생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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