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권 책 읽기! 나는 66일이면 그 사람의 습관이 된다는 말을 무식하게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고, 하루 5분이라도 책을 반드시 읽기로 다짐했다. 66일에 66권은 불가능하지만, 1년에 66권 책 읽기에 무작정 도전했다. 이걸 하고 나면 나만의 새로운 인생의 통찰력을 가질 것만 같은 이상한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책 읽기를 도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케케묵은 감정들에 마주하는 것이었다. (물론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매일 책을 꼭 단 5분이라도, 단 한 페이지라도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과거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처들, 미래의 불안들이 나를 뒤엎으면서 뱃속의 아이에게 미안할 정도로 나는 괴로워하며 알 수 없는 내 감정들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렸다.
괴로운 나의 감정을 끝을 내야 했기에 책을 빨리 결말까지 읽어야만 했다. 그리고 책을 하나 끝낼 때마다 내가 마주한 불편한 감정이 하나씩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감정을 마주해야 하는 그 과정이 지독하게 힘들었다. 성숙하고 합리적이라는 내 자아상과는 반대로 내 마음속에 아직도 수많은 원망과 분노 그리고 자기 연민을 마주해야만 했으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 힘들었고, 누군가의 탓으로 그리고 환경과 구조 탓으로 돌리는 훨씬 쉬운 방법을 택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10년의 독서 굼주림을 며칠 만에 채우려고 허겁지겁 미친 듯이 책을 먹어 치우기에 바빴다. 나는 변화하고 있었고, 이 변화를 남기고 싶었다. 책을 읽은 후 글을 바로바로 쓰면서 느낀 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읽은 것을 다 기억할 수 없지만 과거 기록을 다시 보면 그때 그 책과 치열하게 만나고 소통했던 그 지적인 희열이 기억이 남았다. 독서와 글쓰기는 나도 몰랐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두려워서 지난 몇 년 동안 독서와 글쓰기를 멈췄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와 내가 치열하고 깊이있는 대화로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둘째,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말처럼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흐르는 강물에 담근 내 발은 한 번도 같은 물에 닿은 적이 없듯이, 흐르는 시간 안에서 나는 정체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는 내 글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과거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미래에 다시 글을 읽었을 때 내가 좀 더 성장했다는 것에 대한 증거로 남기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 글은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이, 앞으로 쓰일 글이 가장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셋째, 시간이 지나 책의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내가 독서에 투자한 시간을 최대한 가치있게 만들고 싶었고, 내 인생의 자산으로 남기고 싶었다. 고영성 작가가 항상 강조하는 '글쓰기로 인해서 1회성 지식이 아닌 장기기억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신영준 박사가 항상 강조하는 '습관을 통해 임계점을 넘는 것'을 실천했다.
마지막으로, 만약에 독서한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괜찮다. 독서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언정,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힘을 기르는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 인해 사고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러한 습관을 통해 우리는 더욱 합리적이고, 깊이있고, 따뜻한 사람이 되어간다.
꾸역꾸역 내 감정과 마주할 때마다 지독한 자기 비난과 연민에 맞서야 했지만, 그렇게 나는 내 작은 그릇을 깨고 부수며 좀 더 단단하고 넓고 깊은 그릇을 마음속에 새롭게 만들어 갔다. 내가 감정적으로 바닥을 쳐서 계획대로 하루를 충실히 못 살았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넘어지고 나면 더 강하게 일어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이 또한 과정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말끔히 한순간에 사라지게 했던 대목은,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의 마지막 장이었다. 이 책을 덮을 때쯤, 입이 거친 저자는 나를 아무런 감정도 없는 텅 빈 진공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마지막 장은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어떤 것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어떤 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어차피 언제가 죽을 거라면 두려움이나 민망함, 수치심 따위에 굴복할 이유가 없다. 이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짧은 인생 대부분을 고통과 불평만을 피하는 데 써버린 나는 사실상 삶을 피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p230)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내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신경 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내 인생에서 내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다. 우리는 얼마나 사소한 문제에 신경 쓰며 시간과 삶을 낭비하는가… 내가 언젠가 죽을 거란 생각이 오히려 내 삶을 더 뚜렷하고 선명하게 만들었다. 어둠을 헤매고 있었던 나에게 죽음이란 생각이 내 삶을 더 밝게 빛내고 싶어지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의식적으로 인생에서 진정으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집중하고, 선택하고, 또 실천한다. (이 글은 2018년 6월 28일 작성되었습니다.)
현재 2021년 7월, 이 글을 쓴 지 3년이 지난 지금, 과거에는 꾸역꾸역 습관을 만들려고 고통스럽게 노력했던 나는 지금 독서와 글쓰기가 삶에서 가장 재밌고, 시간을 따로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고, 이걸 해야만 정신적으로 힐링이 되고, 말 그대로 독서와 글쓰기는 내가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업이자 취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