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쟁이는 삶을 관찰하다 번뜩이는 순간이 오면 뭐라도 메모를 해야 한다. 오늘은 무엇이 번뜩했냐고?
나에게서 보인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생선 머리가 좋다고 하셨다. 엄청 맛있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는 항상 엄마는 ‘배 안 고파’, ‘많이 먹었어’라는 말씀을 하셨었다. 가끔 낙지나 회나 꽃게나 고기 같은 좋은 음식들이 나오면 엄마의 젓가락은 접시를 향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엄마는 왜 그러냐'며 언니들은 화를 냈었다. 언니들도 엄마랑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이제는 그냥 말없이 엄마 입에 하나라도 귀한 음식 더 넣어주고, 밥그릇에 하나라도 더 놓아준다. “빨리 먹어”라고 말하면서.
god의 <어머님께> 노래처럼 우리 엄마도 싫은게 많으셨다. “고등어가 뭐라고 고등어가 왜 싫어? 갑자기?” 고기는 왜 싫고, 생선은 왜 싫고, 그놈의 자장면이 뭐라고 자장면은 또 왜 싫으신 건지.
난 그래서 엄마한테 항상 말했었다. “엄마, 나는 엄마처럼 안 살거야. 굴비 세개 사서 남편 하나 다 먹고, 나 하나 다 먹고, 아기 하나 다 줄거야!” 그때는 몰랐다. 굴비를 엄마가 싫어서 아빠랑 나한테 준게 아니라, 왜 굴비 하나를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나눠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 왜 엄마는 생선 살은 싫어하고, 원래 생선 머리가 제일 맛있는거라고 말씀하셨는지.
나는 형제가 넷이었고, 남편은 다섯이라 뭔가 음식에 대한 한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가족은 음식을 먹을 때 각자의 할당량이 있다. 멜론도 두 개씩 사서 배 터지게 먹고, 복숭아도 1인 1복숭아, 생선도 1인 1생선, 고기도 1인 엄청 많이 듬뿍 먹는다. 우리 엄마가 궁상맞아서 이렇게 안 하고 싶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때 그 시절엔 이렇게 할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근데 습관이라는 건 참 무섭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좋은 음식 앞에서는 다른 가족들의 접시를 채워주기에 바쁘고 본인은 국물에 남은 채소만을 떠먹는다. 자식들이 벌써 40대인데, 아직도 우리가 먼저 먹으라고 하고, ‘너희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말한다.
근데 충격적인 건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선포한 내가 똑같이 그러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 아이 줄 멜론을 썰고 있는데 오이같이 딱딱한 겉 부분은 잘라서 내가 먹기 위해 접시에 두고, 안쪽에 부드럽고 달디 단 부분은 아이에게 예쁘게 썰어서 준다. 생선 먹을 때는 당연히 좋은 부분은 아이에게 다 주고, 나는 뼈에 덕지덕지 남은 생선 살을 발라먹는다. 왕만두를 사도 만두피는 내가 먹고, 안에 든 고기는 아이를 준다. 요플레가 뭐라고 요플레 뚜껑을 핧아먹고 아이가 남긴 요플레를 내가 먹는다. 치킨도 느끼한 튀김은 내가 다 먹고, 부드러운 살만 아이를 준다. 식빵은 겉 테두리는 내가 먹고, 안에 부드러운 부분만 아이를 준다.
(근데 반전이 있다. 우리 딸은 효녀라서 그런 건지, 취향이 독특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알고 보니 고기보다 만두피를 더 좋아하고, 치킨 살보다 튀김만 뜯어먹고, 식빵 부드러운 부분보다 퍽퍽한 테두리만 먹는다. 심지어 오이 맛인 멜론 겉부분을 '엄마는 토끼야' 하면서 뇸뇸뇸 먹고 있으니까 아이가 당근이라며 토끼처럼 뜯어먹는다. 아주 맛있게 다 먹었다. (가끔은 엄마 생각으로 옳은 걸 하지 말고, 아이 취향을 존중해 줄 필요도 있다^^;;; 거기에 토끼와 당근같은 서사를 붙여주면 생각보다 아이들은 아주 신나게 잘 먹는다^^;;;)
엄마가 하는 것을 아이는 똑같이 따라 할 뿐이다. 나는 엄마한테 항상 그랬었다. “엄마,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면 겨울에는 따뜻한 물 틀고 설거지하고, 맛있는 거 있으면 먼저 먹고, 좋은거 있으면 바로 바로 쓰고 그래~ 엄마는 내가 엄마처럼 살기를 바래?” 그러면 우리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래도 괜찮아. 근데 너는 안돼!" 근데 엄마는 하면서 얘는 안 하는 건 없다. 특히 딸들은 엄마를 많이 닮는다.
나는 내 딸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순전히 이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예쁜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을 해서, 푸짐하고 정성스러운 음식을 먹는 연습을 한다.
© micheile, 출처 Unsplash
god의 <어머님께> 노래를, 오늘만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과 어머니가 될 모든 딸들에게 바친다.
이 노래와 함께 행복하고 따뜻한 하루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