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거든…

by 내 마음 맑음


아이가 좀 아팠다.

(그래서) 나도 아팠다. 마음이 찢어질 듯이……


가벼운 피부질환이었지만 처음 보는 형태라 당황했고, 처음으로 다리 쪽으로 점점 번지고 있어,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원인이 나를 두렵게 했다. 밤새 한고비 넘기고 아침에 아이가 좋아졌을 때, 남편이 아침식사를 만들면서 가스레인지 앞에서 혼잣말을 한다.


"부모가 되는 게 쉽지가 않아, 그치?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했을까? 애가 다섯인데......"

(웃음. 중얼중얼.)

"모두가 부모 되는 게 처음이니까...... 부모들은 참 위대해!"


그 말에 밤새 참고 있었던 눈물이 터졌다. 갑자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30, 40년 전에는 환경이 열악했으니 부모들이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 싶었다. 할머니들이 "요즘 애 키위기 진짜 쉬워~"라고 하는 말이 미울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시대적 혜택을 받은 세대이고, 그래도 편리하고 풍족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인 건 맞다. 나는 진심으로 시대적 혜택에 감사하다. 인생에서 만나기 힘든 훌륭한 사람들을 온라인을 통해 많이 만났고, 이런 훌륭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아, 맞다! 생각해 보니 자식도 자식이 처음이구나! 기억난다. 나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 누군가의 자식으로 산다는 것,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세상에 당연히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부모들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부모들도 어렸을 때 모든 게 처음이어서 서툰 어린아이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고 그 안에 속해있는 있는 나를 찾으려고 발버둥 치던 청소년기는 또 얼마나 가혹했고, 이제 좀 내 맘대로 살아보려고 하면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깨고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부모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처음을 잊지 않고, 이를 똑같이 거쳐갈 아이들의 마음과 시행착오를 이해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우리 어머니 세대로 돌아와서, 그때는 지금처럼 전문가들을 온라인 영상이나 글로 쉽게 만나는 게 힘든 시대였고, 그 시대 아빠들은 육아와 가사에 무심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특히 시골이면 약국도 병원도 멀고, 모든 것이 다 부족했던 시절, 엄마들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싶다.


지금은 아이가 아프면 바로 응급실에 전화해서 상황 판단을 하고, 24시간 응급실이 열려있어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고, (특히 한국에서는) 핸드폰 하나면 거의 모든 문제가 신속하게 해결이 되는 시대이고,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전문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육아용품도 손쉽고 풍족하고 빠르게 살 수 있는 시대이다.


어머니가 가끔 나 어렸을 때 얘기를 해주신다. 내가 아기 였을 때, 어느날 갑자기 새벽에 열이 너무 펄펄 나서 이러다 큰일 날까봐, 나를 업고 문을 연 응급실과 약국을 찾아 헤맸다고 한다. 한참을 찾아도 불빛 하나 보이지 않고, 길거리의 날카로운 돌멩이들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흙만 날리는 시골의 차갑고 어두운 길거리를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직접 보살피기로 한다.


밤새 젖은 물수건으로 아기가 울다가 피곤에 지쳐 잠들 때까지 온몸의 열을 식혀본다. 그렇게 아이도 어머니도 지쳐 쓰러져 잠이 든다. 햇살 한 줄기가 아침을 깨우며 희미하게 창틀 사이로 들어와 지친 어머니의 다리를 살포시 쓰다듬어 줄 때, 정신 차리고 보니 어머니의 발은 맨발이었다고 한다. 전날 밤 시골길에서 미친 사람처럼 응급실의 빨간 불을 찾아 헤매다, 돌멩이에 찢기고 먼지에 시커메진 그 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발이다.


나는 4남매다. 계산을 해보니 엄마가 24살 때 첫째를 낳았고, 막내인 나를 30살에 낳았다. 지금 36살의 내가 만 3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도 이렇게 갈팡질팡 서툰게 투성인데, 30살 나이에 이미 애가 넷이었다니...... 이게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삶이었던 것 같다. 아이 넷을 키운 그 시절, 새벽에 정신이 나간 채 아이를 업고 울부짖으며 길거리를 헤매는 30살의 여린 여자의 모습이 순간 내 머릿속에 영화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갓난 아기를 업고 있는 어머니의 30살의 모습이, 가끔 지금의 나와 오버랩되어 한 장면으로 보일 때가 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시공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든 시간과 공간이 한 장소에서 만나듯이 말이다. 30살의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지만, 36살의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아파 엉엉 울면서, 아이를 업고 새벽의 찬 공기를 마시며, 맨발로 길거리를 헤매었을 그녀의 심정이 느껴졌다. 내가 30살의 아이 넷인 여인을 만나는 것도 이렇게 마음이 힘든데, 나는 이렇게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나와 내 세상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데, 아이가 선천적으로 많이 아프거나, 어렸을 때부터 수술을 했거나, 아이가 장애가 있는 부모님들은....... 그 심정을 감히 나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아팠던 그날, 가족의 건강이 삶에서 가장 감사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남겼던 일기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나의 가족과 나의 아이는 나의 희생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적적으로 태어난 한 생명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신비로운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관찰하고, 삶의 경이로움을 누릴 수 있는 삶의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다. 나는 아이의 놀라운 성장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하는 마법 같은 시간을 행복으로 채워나간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내 마음과 생각의 그릇도 함께 커져가고 단단해진다.


이것이 아이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부모라서 희생하고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부모라서 더 성장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나는 이 기적 같은 아이에게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행복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해본다. 나는 삶이 주는 이 찬란한 선물을 마음껏 누리는 행복한 인간이 되리라고 마음 깊이 새겨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가족에게, 주변에게,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다.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을 아는 것,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지혜, 이것을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감동일 것이다.


이 깨달음이 죽음과 삶 앞에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이 삶의 기적을 잊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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