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위에는 마릴라 아주머니가 만드신 원피스 세 벌이 서로 다른 쓸모를 뽐내며 앤에게 사랑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앤은 뭔가 부족한 모양이다. 눈치챈 마릴라가 앤의 생각을 물었다.
“I’ll imagine that I like them.”
앤은 착한 아이처럼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마릴라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답일 것이다. 마릴라는 앤에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만든 원피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They’re—they’re not—pretty.”
원피스는 깔끔하고 단정했지만 예쁘지 않았다. 앤은 혼자 단정하고 평범한 것보다는 다른 아이들처럼 마릴라가 우스꽝스럽다고 한 퍼프 소매가 입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원피스 세벌은 모두 평범했다. 앤은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은 깔끔하고 단정한 원피스 차림으로 집을나섰지만, 생화로 화려하게 장식한 모자의 화관 덕분에 주일학교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도착했다.
꽃 장식
차분한 옷차림과 대조되는 알록달록한 화관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어린 소녀가 화관을 쓴 모습을 상상하며 글을 읽고 있으니, 뇌의 저편으로 그리스․로마 시대의 누군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건강한 신체, 흘러내릴 듯 한 옷차림 그리고 머리 위를 장식하고 있는 화관으로 시선이 향한다. 신인 듯 사람인 듯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겨우 백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을 읽으면서 이 천 년 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아마도 그들이 남긴 예술품 덕택일 것이다. 건물과 무덤 장식, 석상, 모자이크, 공예품 등을 통해 꽃 장식을 엿볼 수 있다. 이집트 시대(기원전 2800년~28년)의 사람들에게 꽃 장식이란 왕실에서나 가능한 사치였다. 왕족은 바구니나 꽃병에 꽃, 과일, 잎 등을 장식하여 광범위하게 이용했다. 장미, 아카시아, 제비꽃, 양귀비, 백합, 수선화 등을 재배했고, 꽃 중에서도 연꽃을 가장 소중히 대했다. 하얀 꽃잎과 노란 수술의 조화가 태양신 라(Ra)를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은 매우 양식화된 특정 패턴을 반복했지만, 전체로 봤을 때 꽃이 겹쳐지지 않도록 했다. 꽃의 줄기를 거의 보여주지 않은 형태로 꽂았고 용기에 줄기 지지대도 사용했다.
그리스 시대(기원전 600년~기원전 46년)는 이집트 시대보다 꽃을 보다 자유롭게 디자인했다. 그리스 시대의 전통은 지금까지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Garland와 The wreath, The Horn of Plenty or Cornucopia(풍요의 뿔) 3가지 디자인을 확립했다. 특히 여성들은 머리에 풍성한 꽃장식을 했고, 연인들끼리 서로 화환을 교환하기도 했다. 화환은 올림픽 선수와 군 영웅에게 바쳤지만, 축제 때는 특별히 모든 사람이 장식할 수 있었다. 화환의 디자인, 화환 장식 에티켓은 그와 관련하여 특별히 지정된 디자이너가 있을 정도로 중요했으며 규칙도 정해져 있었다. 장미, 백합, 튤립, 히아신스 등의 꽃과 더불어 다양한 토종 허브도 이용했다.
<Ceres (Allegory of Summer)> Jan Boeckhorst, 17세기
로마 시대(기원전 28년~325년)에는 그리스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약간 변형했다. 무역량의 증가로 자연스럽게 이집트식의 풍성한 꽃병 장식이 활성화되었다. Wreath와 Crowns and garlands는 이국적인 꽃들이 더해서 무척 화려해졌다. 이집트와 그리스 사람들이 과일로 바구니를 채웠다면, 로마 사람들은 꽃을 훨씬 많이 채웠다. 풍요와 과잉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디자인의 발전은 미비했다.
퍼프소매 : But I couldn’t.
주일학교에서 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화관 때문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예쁜 퍼프소매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뻤겠지만, 불행히도 앤의 소매는 유일하게 옷감의 낭비가 전혀 없는 디자인이었다. 앤에게는 퍼프소매 옷이 아니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평소의 활기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제라늄 보니를 보고 있는 앤에게 마릴라가 주일학교에 다녀온 소감을 물었다.
“They all had puffed sleeves.”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다고 믿었던 앤은 처음 참석한 주일학교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It was as easy as could be to imagine they were puffed when I was alone in the east gable, but it was awfully hard there among the others who had really truly puffs.”
지금까지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앤은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었지만, 실제 퍼프소매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앤은 다른 소감도 마릴라에게 이야기했다. 만약 자신이 설교를 한다면 짧고 인상적인 구절을 골랐을 것이라고 말이다. 언제나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앤 이지만, 길고 긴 설교를 듣는 것은 힘들었나 보다. 물론 퍼프소매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