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완성 자서전 Jan 21. 2021

행복하냐고 물었다

워킹맘에서 전업맘이 된 내가 행복한 이유

저녁을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한국에 사는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출산한 지 갓 1년이 된 그 친구는 워킹맘이 된 자신의 변화를 적잖이 버거워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워킹맘에서 갑자기 전업맘이 된 지금 행복하냐고. 난 주저 없이 대답했다. "행복하지!"

친구와의 대화가 끝난 후 난 고민에 빠졌다. '난 정말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왜일까?'


아직도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그날이 생생하다. 팀장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더랬지. 누군가는 "남편 덕분에 해외생활도 해보고, 고생스럽게 일도 안 해도 되는데 뭐가 슬퍼?"라고 했지만, 12년 가까운 시간 동안 (후회도 되지만) 내 삶의 전부에 가까웠던 회사생활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그만두고 돌아선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잘해보고 싶어서, 뒤쳐지기 싫어서 주말도 반납하고 일했던 수많은 날들, 중요한 보고에 빠지기 싫어 대신 놓쳐버린 다신 오지 않을 아들의 첫 운동회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곤 이렇게 갑자기 쉬게 될 거라면 왜 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을까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휴직한 지 2년 가까이 되니 회사에도 동료들에게도 많은 변화들이 생겼고, 나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가끔 '만약 커리어를 계속 이어갔다면 지금의 나는, 그리고 5년, 10년 후의 난 어떤 모습일까?'하는 쓸데없는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준비 없이 갑자기 포기한 것이기에 지금보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며칠 동안 다시 고민해보아도 친구가 물었던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여전히 "예스."이다. 왜냐고?


#1.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라떼는..." 할만한 인생의 전성기가 찾아온다. 나에게도 그랬다. 나에겐 아마도 회사생활을 했던 지난 12년의 시간이 전성기였을 것이다. 물론 부침도 있었지만 노력한 만큼 (때로는 더) 인정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었다. 이 회사에서 5년 뒤 난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서는 가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회사가 날 필요로 한다는 믿음만큼은 항상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인정'이라는 건 무섭게도 부지불식간에 우리 머리와 마음속에 자리 잡고 때로는 우리에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노력을 하게 한다. 어떤 이는 몸이 망가지기도, 어떤 이는 가족들이 엄청난 희생을 하기도 한다. 난 아주 극한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며 회사에서의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의 세상을 보는 눈은 넓어졌고, 16년간의 학교생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것들을 돈을 벌며 배웠다. 지식을 넘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지혜들도 얻게 되면서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회사를 쉬는 순간 마치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안다. 나의 이러한 과거가 만들어준 나는 변함없이 여기 있다는 것을. 더 단단해진 내가 다시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과거 내가 성장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어쩌면 더 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지금부터 계속 성장해나갈 나의 미래가 너무나 기대된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2. 이제야 진짜 인생을 살 준비가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제일 바쁘고 힘들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파묻혀 사느냐 아니냐는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 갈린다. "와, 저 사람은 도대체 어디서 시간이 나서 일하면서 운동도 하고, 주말마다 여행도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지인이 주변에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난 그런 사람과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에너지의 80%는 주중에 회사에 다 쏟아붓고, 주말엔 방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침대 위에서의 휴식만이 거의 유일한 충전 방법인 지루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이라 자부했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런데 회사생활이라는 내 인생의 큰 덩어리를 걷어내고 나니 진짜 내 인생 속에서 큰 의미를 가진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족과의 시간, 친구들과의 소통, 나의 건강, 내 주변을 둘러싼 아름다운 세상 등등...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지금, 다시 회사원이 된다 하더라도 예전과 똑같은 삶은 살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을 먹고 있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괜히 사회의 주목을 받는 게 아닐 것이다. 나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지켜내는 한도 내에서 나의 사회적 소명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나의 능력을 끊임없이 계발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임을 깨달았다. 비록 타의에 의해서 시작되기는 했으나, 갑자기 주어진 여유 덕분에 나에게 진짜 소중한 것들을 온 맘을 다해 지켜내고 누리고 있는 나는, 다시 회사원이 되어도 나만의 균형을 찾으며 성장할 자신이 있는 나는, 행복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하듯 일상을 사는 것의 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