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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Feb 18. 2021

갑자기 미국 학부모가 되었다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에 대하여

미국으로 이사 오기 전 많은 이들이 말했다. "애들은 영어 금방 배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물론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빨리 배우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고, 그 과정이 쉬울 거라 치부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걸 이젠 안다.


미국에 오자마자 급하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아들은 한동안 하원을 하고 나면 온갖 짜증을 부리며 나를 힘들게 했다. 뭐가 힘든지 조차 잘 알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만 3살 어린아이의 마음을 그때의 난 살뜰히 살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진차 만난 소아과 의사에게 (나의) 답답함을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의사가 무심히 건넨 한마디는 아직도 날 부끄럽게 만든다.


"미국에서 어린이집 다닌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죠? 당연히 힘들고 짜증 나지 않을까요?"


20년 넘게 영어를 배우고 사용해온 나도 학문과 생활 영어 간의 괴리를 느끼며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들을 종종 겪고 있으면서도, 영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는 아들이 외계어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겪고 있을 어려움에 대해서는 왜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미국에서 아들이 경험하게 될 여정이 조금이라도 덜 막막하도록 현명한 학부모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지금도 ing...




한국어 vs. 영어 세계 간 다리 만들어주기

대학 입학 직전 나는 캐나다로 짧은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한국의 유명 유학원을 통해 한국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현지 어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 결과...새로운 한국인 친구들(만) 많이 사귀는 좋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 경험 때문일까 아들의 첫 미국 학교는 최대한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으로 선택했다. 그래야 좀 더 빨리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완벽한 영어 사용 환경에 준비 없이 내던져진 아들은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듯했다.


아들의 닫힌 마음의 문을 어떻게 열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아들 반에 한국 아이가 한 명 더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이의 엄마와 만날 기회를 기다렸다. 다행히 학기 초라 학부모 컨퍼런스가 있었고 그곳에서 드디어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시작은 다소 의도적인 접근이었을 수 있으나 우리의 사정을 솔직히 얘기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감사하게도 금방 가까워졌고, 학교 밖에서 플레이 데이트를 하며 좋은 추억을 쌓아갔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의 말을 이해해주는 친구가 생기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애정을 점차 쌓아갔다.


이런 노력은 학교 밖에서도 계속되었다. 아들에게 본인과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면 혼자 외계인이 된듯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에서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가족을 수소문하여 만나곤 했다.


사실 아직도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아이에게는 물속에 내던져 수영을 가르치는 것보다 물속까지 이어진 다리를 엄마가 손을 잡고 같이 걸어 들어가 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과 여러 채널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한국에서도 그렇듯 아이의 등하원 시간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사실 처음엔 형식적인 말들 외엔 할 얘기가 없었지만 아이의 학교생활이 길어지면서 선생님과 나누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선생님이 바쁜데 말을 걸어도 될까, 너무 극성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길 바란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할애받는 것은 학부모의 권리이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선생님을 얼마나 동참시킬 수 있는지는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자주, 솔직하게 하는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에는 간단한 문제들은 즉흥적으로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했지만, 선생님에게도 고민할 시간을 주고 싶은 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편지 (혹은 이메일)를 써서 공유했다. 편지를 쓰다 보면 내 생각도 정리되는 장점이 있었다.


선생님은 다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집에서 아이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다른 경우가 있을 것이다. 남의 연애사만 양쪽의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 게 아니다. 아이와 선생님의 말 모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한 오작교 역할을 해보자.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에 자원하기

공립 초등학교에 있는 유치원에 입학한 뒤 아들은 영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즉, 집에서 영어가 아닌 모국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시험을 치렀다. 아직은 원어민의 영어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결과를 받았고, 그동안 노력해준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약간 조급해졌던 게 사실이다.


영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아이들은 교육구와 학교 예산 사정에 따라 여러 지원을 받게 되는데, 아들이 그런 지원을 놓치지 않고 받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교육구와 학교에서 해당 아이들을 위한 지원방안을 논의/결정하기 위해 운영하는 위원회의 임원으로 자원해서 활동 중이다.


물론 학교 사정상 아들보다 더 도움이 많이 필요한 아이들을 먼저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를 들은 상태이긴 하지만,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의 긍부정적 경험을 학교와 교육구에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은 물론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묻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부모 위원회와 같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서클 안에 들어가 있으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 안 도와줘."라고 투덜거리기 전에 (나를 통해) 아이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아직 미국에서 학부모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경험이지만, 아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보다 절실했다고 자부한다. 좀 더 현명한 학부모가 되기 위해 내가 했던 최소한의 노력들이 어디선가 같은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을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부끄럽지만 내 경험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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