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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완성 자서전 Jan 28. 2021

미국 학교에서 아들 대신 내가 배운 것들

아이를 위한 속도와 방향으로 아이와 함께 가는 법

육아를 하다 보면 나의 인간성을 시험받는 듯한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걸 왜 못할까? 같은 걸 몇 번을 말해야 하는 걸까?" 등 내 속으로 낳은 아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순간들이 오면 이성의 끈이 느슨해지곤 한다. 특히 어려운 시국 덕분에 아이들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예전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모님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도 시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우리 아들은 작년 8월 말부터 미국 공립초등학교 산하의 유치원 프로그램을 100%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있다. 아들의 수업을 바로 곁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다 보니 처음엔 내 예상과 다른 아들의 모습에 당황스럽고 답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아들의 사회적, 학문적 성향을 자세히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내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사실 지난 반년의 시간을 돌이켜볼 때, 아들의 온라인 수업은 나를 위한 육아 수업이기도 했다.


그동안 미국에서의 공짜 육아 수업을 통해 배운 몇 가지 팁을 오늘도 집에서 아이들 때문에 답답해하고 있을 동지 엄마, 아빠들과 나누고자 한다.



#1.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칭찬하라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막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아이가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들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본인 나이 때의 친구들과 비교해도 억울할 텐데, 난 계속 내가 가진 어른의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아들을 평가했다. 미국에 온 지 시간이 꽤 흘렀으니 완벽에 가까운 영어를 구사해야 할 것만 같았고, 수업시간엔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나를, 그리고 아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맞지 않는 너무 높은 잣대를 통해 아들을 평가하다 보니, 나에게는 아들이 늘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면담을 하면 늘 잘하고 있다는 얘기만 들었고, 나의 걱정들이 과도하다는 인상을 받기 일쑤였다.


요즘 아들 반의 아이들은 한창 한 두 개의 모음이 들어간 짧은 단어를 읽고 쓰며, 짧은 문장을 읽는 연습을 하고 있다. 문장까지 곧잘 읽는 아이들도 있지만 아직 각 알파벳이 내는 소리가 익숙지 않아 짧은 단어도 겨우 읽어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강조한다. 지금은 각 알파벳의 소리만 알면 아이들에게 기대된 과제를 충분히 해내고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주어진 과제를 해냈을 때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다음 단계로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라고.


머리로는 다 이해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른 아이들이 앞서 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고 그런 마음은 아이에게 쉽게 들키게 되고 아이의 자신감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굳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내 아이가 지금 주어진 과제를 충실히 해내는 것에 기뻐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엄마가 주는 자신감 열매는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훗날 아이가 홀로 일어서는 데 크나큰 양분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맞는 잣대로 바라보면 날마다 아이의 놀라운 성장이 보인다


#2. 정답 뒤에 숨은 이야기를 강조하라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국인들이 그려질 때 종종 수학을 잘하는 모습이 강조되어 비치곤 한다. 영어를 잘 못해 뭔가 어리숙해도 어려운 수학 문제는 척척 풀어내는 너드 같은 그런 모습...드라마로 볼 땐 왠지 기분이 상했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아이를 키워보니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니다. 언어보다 좀 더 직관적인 숫자를 더 빨리 습득할 가능성이 높고, 못 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더 드러내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 아닐까. 우리 아이도 예전엔 그랬다.


꼭 해외에서 언어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더라도, 모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때 엄마, 아빠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특정 숫자들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내는지 수식을 외워서 하는 수학이나, 단순히 암기력에 의존하여 해결 가능한 것들만 아이가 탐닉하기 전에, 문제의 정답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의 흐름(이야기)을 설명하는 습관과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 반에는 특히 숫자에 강한 아이들이 있다. 3+2=5와 같이 지금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이 한창 배워야 하는 것은 진작에 졸업하고 곱셈, 나눗셈까지 척척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강조하는 것은 3+2가 5라는 것을 기계적으로 외워서 빠르게 암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수식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최근 아들이 나를 놀라게 했던 이야기를 예로 들자면, "내가 뒤뜰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사과나무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내 머리 위로 사과 3개가 떨어졌어요. 떨어진 사과를 줍고 있는데 사과 2개가 더 떨어졌어요. 떨어진 사과를 바구니에 담았어요. 바구니에는 모두 몇 개의 사과가 있을까요?"와 같은 이야기를 수학 시간 내내 주고받는다. 잘 알겠지만 외운 정보는 휘발성이 강하다. 하지만 '제대로 소화된' 그리고 '누군가에게 설명해본' 정보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문다. 그리고 자유자재로 응용도 가능하다. 즉, 습득한 하나의 정보가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정보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답 뒤에 숨은 이야기의 힘을 잊지 말자.


#3. 진짜 지성은 표현할 때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하나 들춰본다. 대학생 때 외교부 내 북핵 관련 부서의 인턴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100% 안다는 확신이 없으면 모른다고 말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면접관의 "북핵에 대해서 좀 알아요?"라는 훅들어온 질문에 그만 "아니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고 아직도 이불킥을 부르는 흑역사 중 하나이다. 이처럼 무엇을 아는 지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을 (이왕이면 그럴듯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도 너무나 중요하다.


육아 서적이나 블로그 포스트를 보다 보면 하나 같이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라고 한다. 그리고 책에 대해 '대화'를 하라고 한다. 이곳 선생님도 '독서 후 대화' 부분을 강조한다. 책 속의 흥미로운 그림과 이야기를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이 1 단계라면, 이야기의 배경, 등장인물, 줄거리, 문제상황, 해결책, 교훈 등에 대해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2 단계일 것이다. 2 단계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책에서 배운 것을 내재화하는 것을 넘어서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되기 때문이고, 둘째, 학년이 올라가면서 긴 글을 직접 써야 할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만 알고 있으면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의 지성은 표현할 때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학업에서 사회생활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가진 능력에 대해 평가받으며 다음 단계로 성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표현하며 서로 나눈 생각들로 사회는 발전해나간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 속에서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함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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