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숨겨진 미국 서부 여행지
나는 모두가 한 번쯤 여행 오고 싶어 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안타깝게도 바이러스는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이곳을 강하게 휩쓸었고, 우리 가족은 자택대피령 (Stay-at-home orders, 병원, 장보기 등 필수 외출 외 금지)이 처음 내려진 지난 3월 이후 집 앞 산책도, 마트 장보기도 최대한 자제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상황이 나아지며 외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기도 했지만 예방적 차원에서 계속 자택대피령에 준해서 생활하고 있다.
9개월째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끼리 집에서만 보내다 보니 중간중간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로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인적 드문 자연 속 여행지로의 짧은 여행을 감행했고, 어수선한 시국에 지친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뒤늦은 후기를 남겨본다 -
#1. 말리부의 숨겨진 보석, El Matador Beach
캘리포니아의 유명 비치인 산타모니카에서 북쪽으로 1번 고속도로 (Pacific Coast Highway)를 따라 이어지는 해변을 말리부라고 부른다. 오픈카를 타고 말리부 해변을 달리는 장면을 꿈꿔본 이들도 있을 것이다. 서핑하기 좋은 높은 파도, 해변을 따라 지어진 고급 주택 등과 함께 말리부에는 유명한 비치들이 너무나 많지만, 말리부의 숨겨진 보석은 단연 El Matador Beach이다.
비치라고 하면 자연스레 고운 모래사장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이곳은 거친 암석들과 함께 대양(大洋)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중간중간 서 있는 기괴한 모습의 커다란 암석들은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터, 어른들에게는 멋진 포토 스팟이 되어준다.
이곳은 일몰이 하이라이트이니 일몰 30분에서 한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하여 태양빛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해변의 여러 모습을 감상해보기를 권한다.
#2. 주인공보다 돋보이는 조연, Lake Gregory & Red rock scenic overlook
엘에이에서 동쪽으로 2시간 정도 달리면 산속 호수 마을인 Lake Arrowhead에 다다른다. 마지막 30분 정도의 높고 구불구불한 산길만 잘 참고 오르면 마치 동화 속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Arrowhead 호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출입 허가증이 있는 거주민들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래서 단기 여행자들은 Lake Arrowhead Villiage라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관광지를 통해 Arrowhead 호를 즐긴다. 이곳이 유명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기대가 커서일까 실망을 하려던 찰나 우연히 30분 거리에 Lake Gregory라는 또 다른 호수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그곳으로 향한 우리 가족은 마치 호수 전체가 우리 것이 된 것 마냥 조용히 호수를 만끽했다. 아마도 Lake Arrowhead의 그늘에 가려 동네 사람들 정도만 아는 비밀의 장소였나 보다. 멍하니 호수와 산, 하늘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는다. 다른 이들과 마주칠 걱정 없이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언제 또 아무도 없는 호숫가에서 호수의 주인이 된 것처럼 사치를 부려보겠는가.
호수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낸 우리 가족은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해가 질 무렵 산길을 달리던 중 선셋을 보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웠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선셋 명당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기대나 계획 없이 발견한 보물이었다. 광활한 산맥과 숨 막히도록 멋있는 선셋 앞에서 잠시지만 내 마음속과 머릿속을 괴롭히던 문제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동안 남 캘리포니아에서 수많은 선셋과 마주했지만, 단연코 가장 이국적이고 황홀한 선셋이었다.
#3. 도시 속 사막, Yucca Valley
마지막 여행지는 코로나 시대에 가장 걸맞은 여행지가 아닐까 싶었던,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Yucca Valley라는 곳이다. 남 캘리포니아에서 사막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곳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Joshua Tree National Park이다. 다양한 사막 지형과 생물들을 볼 수 있는 국립공원인데, 광활한 크기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이지만 우리 가족은 이전에 방문 경험이 있기도 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립공원 근처 동네에 안전하게 주변 산책이 가능한 숙소를 잡고 며칠을 머물렀다.
어쩌다 사람을 무서워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나 한탄스럽기도 했지만, 완벽히 외부와 차단되어 우리 가족만의 시간을 보내보니 기대보다 더욱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물리적으로는 고립된 것에 가까웠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해방감을 느꼈달까. 여행이란 사실 어디로 떠나는지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2021년에는 일상의 평범함을 되찾아 이곳저곳 떠날 수 있길 바라본다. 건강하게 나와 함께 해주는 가족과 친구들, 우연히 마주치는 낯선 이들, 언제나 그곳에 있어주는 자연...모든 것이 새롭고 감사하게 느껴지겠지.
Happy New Year! (이 되길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