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들도 행복해지는 의미 있는 고생하기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해야지 열심히만 하면 안 돼. 하하하"
- 사회 초년생 시절 회식 자리에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잘됐네. 이제 회사에도 도움이 되게 해 보세요."
- 부담스러운 해외출장 후
과거 나의 상사 중 누군가 농담인 듯 진담처럼 했던 말들이다. 솔직히 당시엔 "사람이 왜 이렇게 차가워?"라며 마음속으로 눈을 흘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차갑게만 느껴졌던 그 말들이 내 직장 생활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조직이건 존재의 목적이 있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이루는 데 일조할 수 있는 구성원들이 필수적이다. 혼자 '무작정 열심히' 땅을 파는 사람보다는 나아갈 방향에 맞춰 길을 내는 데 '제대로' 힘을 보탤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가끔 열심히 하는 것 자체에 매몰될 때가 있다. 바쁘게, 다른 이들보다 많이 일하며 내가 맡은 바를 다 해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도 그랬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 자체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상사도 있었지만, 또 다른 상사들은 "일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다.", "조직의 피로도를 높인다." 등의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먹는 억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왕 직장에서 해야만 하는 고생이라면, 나를 위해, 조직을 위해 좀 더 스마트하게 해 보는 건 어떨까?
#1.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직장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대부분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일을 하게 된다. 어떤 이는 A부터 Z까지 자세히 지시를 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큰 방향과 결과물에 대한 대략적 기대치만을 전달하고 일을 맡긴다. 아무리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 지간이라 해도 그들의 한길 머릿속은 알 수가 없다. 그들도 내 머릿속을 알리 없다. 그래서 서로의 생각을 정확히 공유하고 합의를 본 후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의 배경 및 목적, 기대되는 결과물, 결과 도출 방법, 일정 등에 대해 상사와 미리 상의할 것을 권한다. 반드시! 그리고 일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진척상황을 상사에게 업데이트해야 한다. 한참 돌아간 후 이 길이 아닌가벼 하는 것만큼 모두에게 최악인 건 없다. 특히 일정이 빠듯해 되돌릴 수도 없다면...아찔하다. 기한에 딱 맞춰 폭탄을 터트리는 일은 최대한 피하자.
직장생활의 70-80%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만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면 고생은 줄어들고, 인정은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온다.
#2. 나만큼 잘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잊지 말자
일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오너십, 인정에 대한 욕구 혹은 내성적 성격 등 많은 이유로 일을 남과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건 멋진 일이지만 그 책임감 때문에 정체가 발생하고 있다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꼭 내 손으로, 내 머리로 만들어낸 결과물만이 나의 능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일이 되게 하는 데 필요한 리소스를 정의하고 동원하는 것도 나의 능력이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A에 대해 리서치를 해야 한다고 가정해보자. 난 A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옆 팀 이 과장은 A 분야에서 경험이 있다면, 최소한 이 과장에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라도 물어보자. 질문을 한다고 해서, 도움을 조금 받는다고 해서 내가 일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 기억하면 직장생활이 훨씬 덜 고달파진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는 능력자가 된다.
단, 남에게 받는 도움은 유통기한이 짧을 수 있다. 기브앤테이크...직장에서도 예외일리 없다. 나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나만의 엣지를 만드는 것도 잊지 말자.
#3. 안될 일은 미련 없이 떠나보내기
지금까지 제안한 것 중 가장 난도가 높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선 인풋 대비 아웃풋이 보잘것없을 것이라는 걸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쉽지 않고, 본인의 결단을 조직 차원에서 설득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우며, 너무 남발하면 자칫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장기적으로 잘 계발해야 하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상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고 일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지시를 받는 나만큼이나 설익은 생각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맡는 순간부터는 내가 가장 전문가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 나 하나로 인해 여러 명, 여러 부서가 무의미한 고생을 하게 될 수 있다.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조직의 성장에 일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 없는 프로젝트를 초기에 중단시켜 조직 내 여러 리소스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니 Stop!을 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내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꽝을 알아보는 안목과 그 안목을 검증/증명할 수 있는 논리력을 기르자.
더 이상 고생하고도 욕먹는 당신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당신의 고생이 좀 더 의미 있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