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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May 25. 2024

나에게 쓰는 편지

긍정 연습: 나에게 나를 어필하기. 

10대의 나에게 


안녕?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 다녀오느라 수고했어. 수학이 많이 어려웠을 텐데, 모의고사와 학교 시험에서 실망스러운 점수를 받을 때마다 얼마나 괴로웠니? 수학과 과학 성적이 좋지 않았던 너는 '만약에 이러다 내가 대학에 못 가면 어떻게 하지?'라고 걱정하고 있었지? 네 인생에 있어 '재수'는 없다, '지방대'는 여자애라서 위험해서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의 압박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다 수능에서 OMR 카드에 모든 답을 밀려 쓰는, 또 괴한이 너를 마구 쫓아오는 그런 악몽을 꿨다면서? 그렇게 입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부모님께 과외를 시켜달라거나, 학원을 다니게 해달라고 하지 못했던 너를 안아주고 싶어. 아마도 너는  부모님의 형편을 잘 이해했을 거야. 착한 네가 나는 참 좋다. 죽어도 안 풀리는 미적분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씨름하고, 반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 물어보고, 선생님께 여쭤보며 간신히 한 문제씩 풀어나가느라 참 고생했어.


내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너 수능시험에서 수리영역(수학)에서는 주관식을 찍어서 맞추고, 과학탐구영역에서는 그 전날 문제집에서 풀어봤던 문제가 나올 거야. 그래서 20점 이상 점수가 오르게  될 거야. 넌 그 어떤 모의고사보다도 본시험인 수능시험을 잘 봐서 결국 네가 원하던 학교와 과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리고 넌 알게 되겠지. 끝까지 노력하면 온 우주가 반드시 너를 도와주게 된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것을. 


'와... 나도 하면 되는 애구나..' 하면서 그 가난한 형편에 혼자 공부해서 스스로 대학입시에 성공한 너 자신을 처음으로 기특하게 여길 거야. 내 말을 믿어줘. 


20대의 나에게 


안녕?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영어학원을 운영하면서 많이 힘들었지? 


너의 가녀린 두 어깨에 할아버지, 부모님, 두 동생의 생계가 달려있다는 부담감에 혼자서 얼마나 마음고생했을지.... 넌 학원이 아니라 유학을 가고 싶어 했어.  교수가 되고 싶었다면서?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토플 공부를 했었을 거야. 그런데 유학의 꿈이 좌절되었을 때,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하지만 넌 부모님을, 운명과 형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마치 원래 학원을 운영하려고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엄청 열심히 일을 하더라?  전단지에 사탕을 붙여서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아파트 단지 게시판에 학원 전화번호가 적힌 일명 '문어발 전단지'를 붙여놓고. 오후에는 하루 종일 수업을 하고, 밤새 수업 준비를 하던 네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  그 작은 공간을  알뜰살뜰 꾸미면서, 아이들에게 Sound of Music의 마리아 선생님 같은 좋은 선생님이 돼주겠다고 다짐하던 네가 참 자랑스러워. 넌 모래사막도 꽃밭으로 만들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란다. 가지지 못한 것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참 보기 드문 20대 청년이지.   


열심히 가르친 3형제의 한 달 치 학원비를 떼어 먹혀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게 그 학생들을 가르쳤던 너는 참 강단 있는 친구야. '아이들은 잘못한 게 없으니까..'라는 네 생각을 존중해. 또 어떤 날, 한 어머니에게는 몇 번을 망설이고, 망설이다 간신히 전화해서 6개월째 밀린 학원비를 보내달라고 사정해야 했을 때, 얼마나 힘들고 또 미안했을까? 하지만  그 학원비는 너희 가족의 먹을 것과, 동생의 용돈과 대출금의 이자가 되어야 하기에 그만큼 필요한 돈이었을 거야. 그래서 포기할 수 없었을 거야... 기어이 밀린 학원비 받아낸 너의 용기와 절박함과 책임감이 아직도 내 가슴을 아프게 해.  하지만, 참 잘했고, 잘 견뎠어. 그때의 경험이 앞으로 너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할지, 아직 잘 모르겠지? 


그럴 거야.... 현실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테니까... 


30대의 나에게 


'서른'이라는 나이가 참 와닿지 않았을 거야. 어쩐지 진짜 어른이 된 것도 같고, 이룬 것도 있어야 할 것 같았겠지? 하지만 역시 삶은 만만치 않고, 이룬 것은 별로 없었어. 하지만 너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정말 축하해. 30대의 너는 일과 육아와 살림, 거기에 공부까지 한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한 삶을 살았을 거야. 특히 6개월 된 둘째 아들을 아기 띠에 메고, 대학원 수업에 들어가던 날을 기억하니? 유난히 예민하고, 너에게만 매달려 있는 아들 때문에 참 고생했어. 교실에서 분유 병을 물고 있는 아들을 너의 교수님도, 학생들도 참 예뻐주셨지? 그때는 운전도 못해서 아이 데리고, 버스 한 번, 지하철 한번, 도보로 15분 걸어서 학교까지 갔어.  그때 아마 네가 제일 많이 했던 생각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였을 거야. 하지만 사실 넌 알고 있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해서가 아니라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참 좋아서 그 고생길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설거지통에는 그릇이, 세탁실에는 빨래가, 거실에는 두 병의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과 책 더미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며, 기가 막혔을 거야. 하지만 남편에게 빨리 도와달라고 소리 질러가며, 눈물 훔쳐 가며 순식간에 집안을 정리하고, 이유식을 만들 수 있는 씩씩한 슈퍼우먼이 된 네가 자랑스러웠어. 


40대의 나에게 


40대 초반의 너는 요즘 매일 글을 써. 즐겁지 않니?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야. 출세했다, 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뿐 아니라, 안다고 해도 실행에 곧장 옮기지는 않을 거야. 우리 모두에겐 해야 할 이유보다는 하지 않아도 될 핑계가 더 많으니까. 운 좋게도 너는 시간과 기회가 결코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그래서 주어진 이 귀한 시간에 네가 가장 원하던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 마치 누가 보면 원래 작가인 듯, 모든 삶의 소재들을 글감이라 생각하고 메모하고, 사진을 찍어두지. 20대의 네가 학원을 운영하려고 태어난 사람인 듯 열심히 일을 했던 것처럼. 


그런데 요즘은 한국사와 Chat GPT와 생성형 AI에 관심이 많다면서? 지금 열심히 글 쓰는 연습을 해서 어느 날엔 많은 사람들에게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역사 에세이와 AI 관련 책을 쓰게 될 날이 오길 바란다. 한 푼 두 푼, 저축하듯 열심히 글을 써두고, 많은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는 진짜 작가가 되길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부정보다는 긍정을, 

원망보다는 극복을,

포기보다는 다시 한번 더 해보는 끈기와 인내를 선택하는 너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내가 함께 할게. 


세상에 사는 그 마지막 날까지.

 

우리 잘 지내보자.... 난 네가 참 좋아. 


사진: UnsplashDebby Hu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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