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자라는 중...

아이는 겨우 다섯살인걸요.

by 김하예라

어제 오후, 아이의 놀이치료센터에 다녀왔다. 아이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서 40분 동안 놀이를 했고, 그 후에 선생님과 나의 상담이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아들이 사회성 발달이 늦고, 상호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 부분에 초점을 두고 놀이치료를 진행하시겠다고 했다. 대부분 나도 동의하고,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상담 끝 즈음, 내가 물었다.


"만약 아이가 상호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한 채로 크면 어떻게 되나요?"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겠지요? 학습도 그만큼 더딜 것이고요."

"놀이치료를 계속하면 아이의 부족한 상호 소통 능력이 향상될까요?"

"글쎄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뭐라 정확히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 선생님의 확실하지 않다는 답변에 그만 내 마음이 답답해지고, 조급함이 밀려왔다. 저러다 우리 아들이 영원히 우리나라 말을 못 할 것만 같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할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나의 마음이 지하 10층쯤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부정적인 정서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나는 기한을 정해놓고, 목표를 정하고, 노력하거나 성취하는 것을 좋아한다. 공부도, 사업도 그런 식으로 했고 대부분 성과가 나왔다. 인정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녀 양육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목표도 뭐가 정확한 건지 잘 모르겠고, 또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성과에 대한 인정은 인생 마지막에 가서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에서 빗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자녀 양육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 순간순간 실망하고, 당혹감을 느끼고, 어느 날은 무능함과 우울함마저 느끼게 한다. 나는 아들 놀이치료와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기운이 없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냥 누워있었다. 심한 무기력으로 밥을 하기도 귀찮았다. 여차하면 포장이나 배달을 시킬까 했다.


그런데 세상 편안한 옷차림(하얀 러닝과 팬티 바람)을 한 아들이 혼자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멋지게 블록 성을 쌓더니, 나에게 어서 와서 보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의 얼굴에는 웃음기 가득이었다. 나는 너무 귀찮지만 간신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들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빨강, 파랑, 노란색의 나무 블록을 쌓아 멋진 성을 쌓아 놓은 것, 알파벳 조각으로 'SAMSUNG', 'TUESDAY' , ' HASHBROWN'등의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 철자를 외워서 정성껏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 아이의 역작에 사랑과 관심을 담아서 칭찬을 가득해주었다. 아이는 이어서 유튜브 키즈 앱으로 'bingo' 노래를 박자에 맞춰 크게 따라 부르면서 즐거워했다.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래... 아들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았는데, 쉬면서 유튜브 좀 보면 어떤가? 유튜브가 사회 악도 아니고. 아이에게 유튜브 보여준다고 너무 그렇게 죄책감 느끼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지금 이 순간, 이렇게 행복한데, 자기의 다섯 살 인생을 저토록 즐겁게 사는데,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제3자인 내가 그토록 우울해할 이유가 없지 않나. 따지고 보면 아들, 당사자의 오늘 하루가 행복하면 된 거지, 몇 년 뒤 친구 문제, 학습문제까지 미리 끌어당겨서 나 혼자 그 애 걱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내 가슴을 가득 채웠던 우울감이 싹 사라지면서 '그래, 나도 오늘 행복하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저녁밥을 아주 잘 챙겨서 먹고 싶어 졌다, 마침내 요리를 할 힘이 생겼다. 나는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삼겹살을 굽고, 상추를 씻고, 콩나물국을 끓여서 후다닥 한 상을 차려냈다. 그리고 상추에 구운 마늘, 삼겹살, 고추장을 넣어 큼지막한 상추쌈을 만들어 입에 냉큼 넣고 먹었다. 아삭하고 부드러운 상추와 함께 알싸한 마늘, 고소한 삼겹살, 매콤한 고추장이 어우러져 정말 맛있었다. 역시 삼겹살은 진리다. 아들 식판에도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주었더니, 포크로 찍어서 잘도 먹는다. 아들은 스스로 국에 밥을 말더니 콩나물과 함께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렇게 우리 둘은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밤에 아이를 재우면서 이렇게 말했다.


"동동아, 오늘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밥도 먹고, 낮잠도 자고, 간식도 먹느라 수고했어. 놀이 선생님이랑 노느라 수고했어. 두 번째 만나는 분이라 낯설었을 텐데.... 너무나 멋지게 너의 할 일을 잘 해내서 엄마는 정말 고마워.. 내일도 우리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자."


아이는 나의 다소 긴 칭찬을 듣느라 졸린 눈을 간신히 뜨고 있었다. 나의 칭찬과 격려와 응원의 뽀뽀를 받던 아들은 천사처럼 밝은 미소로 씩 웃어주었다. 아직 말로 표현은 못 하지만, 분명히 아이의 눈빛은 나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금방 잠이 들었다. 몹시 피곤했나 보다.


그렇다. 아이의 언어발달이 조금 늦으면 어떻고, 친구 사귀는 것이 조금 어려우면 또 어떤가. 아이는 겨우 다섯 살인 것을. 앞으로 자랄 일, 좋아질 일, 발전할 일만 남은 것을.


그러니, 아이 걱정은 이제 그만하고 오늘 나 자신에게로 관심을 돌릴 일이다.


'너는 오늘 하루 어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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