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내일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들과 근처 숲으로 숲 체험을 떠난다. 선생님은 끈 달린 물통을 준비물로 가져오라고 하셨다. 집에는 그런 물통이 없어서 남편이 사 왔는데, 빨대로 먹을 수 있게 되어있는 물통이었다. 동동이는 빨대로 물을 먹는 것보다는 그냥 컵에 입을 대고 먹는 것을 선호한다. 자기가 불편하면 잘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남편은 아들이 잘 사용하는 물통에 오늘 새로 산 물통에서 빼낸 끈을 연결해 주었다. 아들은 아빠가 끈을 달아준 물통을 어깨에 메고 숲 체험을 하다 목이 마르면 시원하게 물을 마실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빨대로만 물을 먹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먹는 것, 입는 것, 놀이하는 것 모두 주체는 아이인데, 일정한 틀을 정해놓고 그것에 벗어나는 행동을 용납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매번 돌이켜본다.
내 동생은 어렸을 때 당근을 잘 먹지 않았다. 당시, 학교에서는 급식에서 나오는 모든 반찬을 남김없이 먹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물론 학교의 방침을 이해한다. 아이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영양소를 모두 섭취할 수 있고, 다양한 식감의 음식을 씹는 활동이 두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니까. 편식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음이 분명하다. 학교의 깊은 뜻을 알리 없는 내 동생은 당근의 식감이나 맛을 싫어했고 당연히 집에서도 당근은 먹지 않았다. 그런데 유난히 무서운 담임선생님이 엄한 표정으로 '모두 먹으라'라고 시키셨기에 억지로 카레에 들어간 당근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먹기 싫은 음식을 모두 먹은 동생은 그만 급체를 했고, 탈이 크게 나서 3일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당근이 아니라도 비타민과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가 있으며 딱딱한 식감의 다른 채소도 얼마든지 있으니, 정 먹기 싫으면 아이가 안 먹어도 그만이지 않나? 당근 안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차린 반찬을 모두 먹어야 한다고, 편식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때 되면 다 먹을 것을 믿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기 때문이다. 특히 아들은 가리는 것이 많다. 특히 비타민, 철분, 식이섬유가 풍부한 시금치를 잘 먹지 않는다. 몇 번 시도를 해 보았는데, 여간해서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굳이 먹기 싫어하는 시금치를 갈아서, 또는 삶아서 시금치 티가 안 나게 요리해서 먹이는 것은 하지 않는다. 나는 요리를 잘 못하고,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다.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콩나물국을 좀 더 자주 끓인다. 콩나물에도 단백질, 무기질, 비타민이 들어있고, 시금치를 씹는 활동이나 콩나물을 씹는 활동은 비슷할 것이니까 두뇌에 미치는 영향도 비슷할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콩나물국에 오징어도 썰어 넣고, 어느 날은 황태를 잘게 썰어 넣고 달걀을 풀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는 오징어, 황태, 달걀, 콩나물을 모두 꼭꼭 씹어 잘 먹는다. 굳이 아이가 싫다는 시금치가 아니어도 건강과 두뇌발달을 지키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지 않을까?
사회성 발달의 때와 방법은 누가 정하나?
'사회성'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성 발달은 워낙 어디를 가나 강조한다. 나도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꼭 굳이 사회성 발달을 위해 특별한 처치가 있어야 할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딸아이가 여섯 살 때, 유치원 담임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다홍이가 사회성이 부족하고, 너무 조용합니다. 자기 의견을 잘 표현하지 않아요. 테니스나 태권도 같은 활발한 운동을 시켜보세요.'라고 조언해 주셨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딸에게 물었다. '다홍아, 너 태권도 다닐래?' 아이는 기겁을 하면서 싫다고 했다. 그리고 원래 다니던 발레학원에 계속 다니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그때, 아이에게 억지로 태권도 학원에 다닐 것을 강요하고 종용했다면, 아이가 느꼈을 기분은 어땠을까? 자신의 의견이나 취향은 무시를 당했다는 생각과 반발심이 들어 더욱 조용하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인 다홍이는 사회성이 있다 못해 넘쳐서 학급회장과 동아리 리더를 도맡아서 한다. 학교에 아침 7시까지 가서 수업 전에 교실에서 친구들과 열심히 놀고, 주말에는 도무지 집에 붙어있지를 않는다. 심지어 숙제를 할 때도 친구와 전화를 하면서 한다. 그녀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내가 해준 것은 없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다는 발레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을 때까지 다녔고, 조금 지나자 보드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한참을 보드에 빠져 살았을 뿐이다. 지금은 아이돌 댄스에 심취해 있다. 나라에서 예산이 지원되는 청소년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서 자유롭게 청소년 수련관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간식과 의상비까지 지원을 받아 열심히 활동한다.
나도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좋다. 나는 일할 때는 사람들과 만나서 열심히 일을 하고, 의사소통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는 3주 동안 집 밖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아도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낀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어울려 노는 것보다는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을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보면 '사회성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남편이 나에게 제발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라고, 왜 이렇게 집안에만 있냐고 핀잔을 준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굉장히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집에 있던, 친구랑 놀던 내 마음이지,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싸울지도 모른다. 나도 나의 취향을 존중받고 싶듯, 아이들도 당연히 그러할 것 아닌가?
물을 빨대로 먹던, 안 그러던, 시금치를 먹던 안 먹던, 영어를 한글보다 더 좋아하던, 혹은 영어라면 질색 팔색을 하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던, 아니면 집에서 혼자서 책을 보거나 혼자서 조용히 곤충을 관찰하는 게 좋던... 아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주면 힘이 훨씬 덜 들것이다. 엄마가 빨대로 먹으라면 먹고, 시금치 먹으라면 먹고, 영어 공부하라면 하고, 나가서 놀라면 놀고.... (그런데 과연 그런 아이가 있긴 있을까? 혹시 그런 아이가 있다면 그건 엄마에게 사랑받으려 아이가 늘 참고, 애쓰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내 아이는 엄마가 하라는 대로는 절대로 안 하고 사사건건 자기 마음대로 하는 아이라고 해도 어쩔 것인가. 존중하고 인정하고, 사랑해 주어야지.
그것이 바로 엄마가 아이에게 베풀어야 할 '조건 없는 사랑' 아닌가?
자꾸 아이를 내 마음대로 재단하려고 노력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자. 기다려주자.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사랑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아이가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보면서 실패도 경험하고, 좌절도 경험하고, 성공도 경험하며 몸도 마음도 자존감도 자랄 것이라고 믿기로 마음을 정했다.
'엄마는 너를 믿어. 너도 엄마를 믿어줄래? 우리 그렇게 서로 믿고 기다려주면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