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력적인 아들 육아의 세계

by 김하예라

그러니까... 벌써 십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목동의 한 입시학원에서 중학교에게 영어를 가르칠 때 가장 낮은 레벨의 반을 맡은 적이 있다. 중학교 2학년 반 이었는데, 정원 12명 중 11명이 남학생이었다. 그들은 내가 내준 과제를 거의 해오지 않았다. 아무리 교실이 따뜻해 이마에서 땀이 뻘뻘 날 지경이어도 절대로 점퍼나 교복 재킷 등 겉옷을 벗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는 대부분 졸았다. 같은 문법을 여러 번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몇 명은 곁에 가면 담배 냄새가 나기도 했다.


아이들의 겉모습은 약간 야수 같았으나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결은 착했다. 그들은 "얘들아... 다 좋은데 수업 시간에 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제발.." 이라는 나의 호소 어린 규칙은 최대한 잘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런 모습이 예뻐서 과제를 잘 해오거나, 단어 시험을 잘 보거나, 수업 시간에 졸지 않을 경우 칭찬 도장이나 스티커를 주었다. 60개를 다 모으면 선물을 정성껏 포장해서 선물전달식을 했다. 학생들은 비록 영어교재는 집에 두고 올지언정 그 칭찬 도장이 찍힌 용지는 반드시 챙겨 왔다. 가끔 거의 다 모은 용지를 분실하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심각하게 앉아있던 학생의 표정이 떠오르곤 한다. 처음에는 60개를 어느 세월에 모으겠냐는 나의 예상을 뒤엎고 몇 개월이 지나자 하나둘씩 선물을 받을 학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받은 학생은 그날 모든 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곤 했다.


내가 오기 전, 선생님이 자주 바뀌었던 그 반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같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나도 학원 강사를 그만두지 않았고, 학생들도 레벨 테스트를 보아 상위 레벨로 올라가야 하지만, 그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참, 정원 12명 중 유일한 여학생은 벌써 한참 전에 다음 레벨 반으로 올라갔다. 나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많으며 공부 잘 못하지만 마음이 착한 남학생들을 힘들지 않게 가르칠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독립하여 학원을 개원하였을 때에도 남학생 비율이 높았다. 그래서 나는 남학생들과 어느 정도 잘 맞는구나 여기며 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들을 신생아부터 키운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동안 가르쳤던 이들은 최소한 영유아는 아니었고, 말도 하고, 스스로 학교도 다니는 어엿한 중학생이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 삼십 분씩 주 3회를 보는 것이 아닌 365일 24시간 돌보며 수많은 번민과 어리둥절함과 답답함과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앞서 9년간 경험한 딸, 다홍이 육아와는 전혀 다른 아들 육아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예민한 아들 동동이는 낯을 많이 가렸다. 부모나 누나가 아니면 다른 어른에게 결코 가지 않았다. 그리고 싫은데 자꾸 안기라 강요하면 목청껏 울었다. 어찌나 큰소리로 울던지 나중에는 내 귀에서 '삐'하는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개성 넘치는 동동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36개월,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독박 육아를 하며 인생이 쉽지 않음을 날마다 경험했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밥 먹고, 낮잠까지 자고, 오후 간식을 먹고 집에 오기까지는 약 8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차려져 있어도 입을 꾹 다물고 먹지 않는 아이를 끝까지 기다려주시고,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는 규칙에 반하면서 까지 동동이가 집에서 잘 먹는 반찬(조미김, 닭고기 장조림, 낫또 등등)을 가져오도록 허락해주시는 어린이집 선생님 앞에서 나는 늘 죄인 같은 심정이었다. 그분들의 아들에 대한 피드백 하나에 울고 웃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버텨내고 있는 '아들 육아' 덕분에 얻은 것도 많다. 먼저, 이전보다 훨씬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 '엄마는 마음대로 아파서도 다쳐서도 안된다'의 마음가짐으로 균형 잡힌 식단으로 골고루 챙겨 먹고, 유산균, 오메가 3, 비타민D, 멀티비타민 등의 각종 영양제도 골라서 먹었다. 아침마다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했다. 뿐만 아니라 매일 한 시간씩 동네 산책길을 걸으며 마음을 다독이고, 햇빛을 쐬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다. 우울증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박혜란 저),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 (최치혁 저)', '아이의 행복을 위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웨인 다이어 저)와 같은 아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쌓아놓고 읽었다. 하루를 시작하며 새로운 다짐의 육아일기를 썼고, 하루를 마무리하며 눈물의 반성 및 회개의 일기를 썼다. 그렇게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스렸다.


아들 육아 덕분에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 놀이터에서 만난 남자아이들, 길거리에 다니는 남학생들, 그리고 그들 곁의 어머니들에 대한 나의 시선이 더욱 부드러워진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여자아이들이 살지 않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내 눈에는 남자아이들만 들어왔다. 빽빽 울던 갓난쟁이 아가들이 저만큼 사람 꼴(?) 되어 놀이터에서 혼자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도 타며, 심지어 학교에 다니기까지 어머니들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지 느껴졌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게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아들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름 '교육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몇 개의 이론과 몇 가지 임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도 나는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밥 한 숟가락 먹게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길 건너 어린이집이 보이면 나의 어깨는 저절로 움츠러들었으며, 어린이집에서 오는 전화만 보아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당당하던 내 목소리는 가늘고 친절해졌다. 겸손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한마디, 아들을 이미 키워 결혼까지 시킨 여유 있는 선배 어머니들의 조언 한마디, 위로 한마디를 가슴에 새기며 배우는 사람이 되어갔다. 모든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모든 발달은 표준으로 나왔으며, 음악회든, 교회든, 식당이든 어디를 데리고 다녀도 잘 적응하고, 애교가 넘치며 말까지 또박또박했던 다홍이만 키웠다면 이토록 매력적인 '매운맛 아들 육아의 세계'를 모르고 죽을 뻔했다.




나는 고작 아들을 몇 년 키웠을 뿐인데, 당혹스러운 에피소드는 넘친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어만 말하고, 한국어는 전혀 하려고 하지 않아 나의 속을 까맣게 태웠다. 뭔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온 가족이 함께 간 고깃집 문 앞에서 단 한 발도 들여놓지 않아 나는 배고파 쓰러질 것 같다는 딸과 삼겹살을 시켜 먹고 남편은 안 들어가겠다고 버티는 아들을 데리고 집에 가서 냉면을 끓여 먹은 적도 있다. 여행지 호텔이 낯설어 신발도 벗지 않는 아이를 하염없이 안고 있다가 근처 마트로 기분전환하러 나와서 간신히 달랬다. 무엇이든 상상 그 이상이었고 예측불가였다. 단 하나 예측이 가능한 것은 앞으로도 신기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동이의 독특한 성향을 잘 관찰하고, 지켜보고, 기다리고, 응원해주고 싶다. 이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생명체, 아들에 대해 알고 배워야 하겠다. 예민한 기질로 태어나서 안 그래도 처음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고, 불편해서 울고 싶은 일 투성이인데, 엄마마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어떤 마음이 들까. 낯섦을 넘어 외롭게 느껴질 것이다. 무척이나 슬플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도와줄 것이 있다면 열일 마다하지 않고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도와줄 때와 기다려줄 때를 지혜롭게 구별하여, 아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다. 무엇보다, 동동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해 주고 싶다. 때로는 격려상, 응원상도 주려고 한다. 때로는 그것이 예쁜 귀걸이나 목걸이일 수도 있고, 신상 가방일 수도 있고, 디자이너 친구가 만든 코트일 수도 있고,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비용은 아들을 맡기고 회사에 일하러 간 아이 아빠, 즉 내 남편이 치러야 할 몫일 것이다. 남편의 카드는 당당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긁을 예정이다.


아들을 키우며 흘린 수많은 나의 눈물방울과 남편의 카드값이 쌓여 아들도 나도 무럭무럭 성장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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