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살고 싶습니다.
잘하면 100살까지요.
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쁘거나, 복잡한 인간관계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반복적으로 생길 때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 안식하고 싶어.. '
그런데 사실 '너무 힘드니까 죽고 싶다'라는 나의 그 말은 진심이 아니다. 사실은 힘들지만 이 생을 너무나 살고 싶었다. 내가 삶을 얼마나 갈망하는지는 아플 때 확인할 수 있다.
어느 일요일 저녁, 남편이 저녁식사로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맛있게 먹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만 탈이 났다. 남편은 냉동실에 있던 약간 오래된 돼지고기를 넣은 것이 장염을 유발한 것 같다면서 무척 죄책감을 느꼈다. 그가 넣은 돼지고기 때문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근육통, 복통, 두통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다. 밤새도록 장염 증상으로 고통 속에 지내면서 내가 했던 한 가지 생각은 '얼른 이 지겨운 세 가지 통증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였다. 아프지 않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에 대한 열망이 장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장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장벽을 손상시켰고, 이것으로 인해 복통이 일어나고, 뇌로 가는 산소가 부족해져서 두통이 생긴다고 하셨다. 우리 몸의 고마운 면역체계 덕분에 1주일이면 회복이 될 것이지만, 식사량을 줄이고 자극적인 음식 피하며 장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덧붙여 고기, 빵, 커피, 튀긴 음식, 밀가루 음식 먹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커피를 못 먹어서 아쉽긴 했다. 그러나 일단 내가 살아야겠기에 얌전히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기로 했다. 하루라도 빨리 회복되고 싶은 마음에 금식을 하면서 장에 좋은 유산균과 따뜻한 물 그리고 매실차를 수시로 마셨다.
그렇게 내가 누워있는 동안, 집안과 아이들에게서 엄마 없는 티가 팍팍 났다. 남편은 하루 휴가까지 내고, 나의 빈자리를 메꾸느라 노력했다. 그러나 집안 정리를 하는 동시에, 빨래를 돌리고, 아이의 학원 가는 시간에 딱 맞춰서 저녁밥을 차리면서, 딸에게 '반드시 학원비 카드 결제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의 역량 밖이라고 고백했다. 엄마의 역할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갔고, 설거지통에 그릇은 쌓여갔고 딸은 학원비 결제를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 덕에 마음껏 누워서 아플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또 하루가 지나자, 꽤 살만해졌고, 남편도 출근했다. 나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방에서 잠깐 누워있다가 인간이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집안 정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어제는 그렇게 먹기 싫던 커피의 카페인이 그리워졌고, 소화 기능이 돌아왔는지 배도 고파졌다. 아무리 아파도 이렇게 약을 먹고 며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회복이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희망적인지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주신 약을 먹고 금방 증상이 호전이 되자, 내가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안 태어나고 대한민국에 태어난 덕분에 이런 훌륭한 의료 혜택을 받게 된 것이라고, 선생님뿐 아니라 나라에까지 감사의 마음이 넘쳤다. 살만해지까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죽고 싶다느니, 그만 천국에서 쉬고 싶다느니 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말기로 했다. 건강한 식단을 챙기고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운동을 거르지 않고, 미리 쉬어서 아프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건강하게 나 자신을 잘 관리해서 주어진 하루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