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이 필요합니다.
느슨해져도, 풀어져도 오케이.
특별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어 제법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꼭 닫혀있던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집안 정리 정돈을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이 장난감, 책, 옷가지들을 자기 자리에 넣고 로봇청소기를 작동시켰다. 동그란 몸에 바퀴가 달린 로봇 청소기는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제법 꼼꼼하게 청소를 하는 신통한 살림 친구이다. 그는 가끔 길을 못 찾고, 구석에 처박혀 '장애물을 제거해 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면 '얘. 너 또 거기 들어가 있니? 자꾸 그러면, 새 걸로 바꿔버릴 거야.' 하면서 멈춰있는 로봇청소기에게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한다. 어려움에 빠진 청소기를 구조한 후, 다시 작동 버튼을 누르면 이 아이는 자신의 할 일을 열심히 한 후 알아서 충전기로 가서 '충전을 시작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음번 청소를 위한 재충전을 시작한다.
정리 정돈과 청소가 막 끝나서 깔끔해진 집안에서 난 비로소 편안함과 안정감을 누리곤 한다. 할 일을 마친 로봇 청소기처럼 나도 충전을 위해 달콤한 낮잠에 빠져든다. 주중에는 할 일이 많아 낮잠은커녕 방바닥에 허리를 대고 누울 틈도 없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쯤이 되면 주중에 쌓였던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심지어 다음날 역시 휴일이라는 생각에 한껏 조이고 있던 긴장의 끈을 자연스레 풀곤 한다. 폭신폭신하고 기다란 쿠션을 껴안고 옆으로 누워서 휴대폰으로 넷플릭스 드라마를 한 편 골라서 보다 보면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한 시간 정도 한잠 푹 잔 뒤에 부스스 일어나 보면 얼마 전까지 깨끗했던 거실은 어수선한 상태로 완벽히 되돌려져 있다. 그렇지만 '아들 키우는 집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면서 한번 웃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따뜻한 차 한 잔을 타서 마시면서 아직 다 가시진 않은 낮잠의 여운과 몽롱함을 천천히 즐긴다.
사실 나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에도 일을 했고, 학교에 다녔다. 가끔 집에 있는 날에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곤 했다. 어쩌다 낮잠을 자고 나면 몽롱함을 즐기기는커녕 1초라도 빨리 잠에서 깨기 위해 진한 커피를 마셨다. 읽어야 할 밀린 자료, 기한 내에 논문을 써야 하는 숨 막히는 작업이 떠올라 마음이 분주했다. 낮잠이라는 가당치 않은 호사를 제멋대로 누려버린 후에는 귀하고 아까운 시간을 잠으로 낭비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써야 할 것과 읽어야 할 것이 지천에 쌓여있었기에 '느슨함', 혹은 '풀어짐'이 주는 매력을 느낄 틈이 없었다. '잠은 어차피 죽고 나면 실컷 잘 것'이라는 둥, '인생의 3분의 1을 잠에 빠져 산다는데, 세상에 그런 낭비가 어디 있냐'라는 둥의 차가운 말로 나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고 바쁘게도 데리고 다녔다. '쉼'이라는 축복을 거부한 나는, 진지하고 빡빡한 긴장이 나의 두 어깨를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꼈다. '피곤할 때는 잠을 자야 한다'라는 매우 기본적인 질서와 법칙도 모른 채 몸을 혹사시켰다. 면역성 저하에 따른 몇 가지의 질병과 날카로운 신경질이 대가로 주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모든 공부를 다 마치고 대학원까지 졸업을 한 뒤부터 아주 오랜만에 생긴 이 여유를 가능한 즐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정기적인 일이나 수업을 만들지 않고 쉬기로 작정했다. 주말 오후, 한 시간의 낮잠이 가능한 토요일을 되찾고 난 뒤에 나는 철만 되면 걸렸던 독감, 툭하면 걸리던 감기와 결막염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내과와 안과에 갈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내가 낮잠을 자는 동안 떼쓰지도 않고 거실을 다시 어지르면서 혼자서 잘 놀고 있는 아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를 수 있다. 불안함도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낮잠에서 자연스럽게 깨어, 누운 채로 "동동아, 엄마 뽀뽀!"하고 아이를 부르면 놀고 있던 블록을 내려놓고 한달음에 달려와서 내 볼에 뽀뽀를 쪽 하고 다시 놀던 곳으로 뛰어가는 아이의 포동포동한 뒷모습이 사랑스러울 뿐이다. 토요일의 여유는 이토록 건강하고, 달콤하다.
'토요일에는 일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기'라는 나의 다짐이 언제까지 지켜질지, 운 좋게 계속 주어질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오랜만에 비로소 얻게 된 토요일의 여유, 그것이 허락된 날 동안에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기고 싶다. 낮잠의 즐거움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