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야기를 좋아하시나요?

남겨진 이야기를 읽고, 남겨질 이야기를 씁니다.

by 김하예라

나는 유독 이야기를 좋아한다. 글을 모를 때는 할머니 품에 안겨 듣는 옛날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글을 떼고 난 후에는 동화책을 좋아했고, 커서는 추리소설, 연애소설, 역사소설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작품뿐 아니라 영문학, 러시아 문학 상관없이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좋아했다. 특히 대학입시라는 어렵고 버거운 관문을 통과하고, 자유로운 대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국경 초월, 시공초월, 삶과 죽음 초월을 막론한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분들은 정말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사람임에 분명하고,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각 등장인물 속에 혼을 불어넣어 그들이 마음껏 살고, 사랑하고, 죽음을 맞이하도록 질서 정연하게 만들어 놓은 책 속의 세상을 만났다. 서울 토박이인 내가 수많은 사투리 표현과 방언을 이해하며 글을 따라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지만,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다음 장을 펴고, 읽고, 그다음 권을 떨리는 마음으로 펴곤 했다. 글 속에 몰입되어 주인공 서희도 되었다가, 길상이도 되었다가, 임이네도 되었다가, 최치수도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모진 풍파를 어리고 여린 몸으로 받아내며 고통받고 극복하고 성장하는 주인공 서희를 삶을 따라가며 나도 울고, 웃고, 분노했다.


거장들의 작품 속에 빠져있다가 현실 속의 나를 바라보면 참 철이 없어 보였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씩(?)이나 되었으면서도 영미 문학 작품 원서를 한 번에 해석해 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원서와 번역서를 같이 펴놓고 읽으면서 대조해 가며 간신히 읽고 이해하고, 요약하여 느낀 점을 영작하는 수준의 비루한 나의 글을 읽으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한숨을 푹푹 들이쉬고 내쉬다 나의 비루한 문학성과 지성, 그리고 감성을 충전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도서관 4층 서고에 가득 있는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읽으며, '아니! 이분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쓰시는 거지?' 하며 경이로움과 감탄을 연이으며 내 눈은 그야말로 '놀란 토끼눈'이 되곤 했다.


이처럼 작가들이 활자에 영혼을 불어넣어 한 글자씩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예술작품인 한 권의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정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다. 속도감 있게 쓱쓱 넘기며 읽어갈 수 있는 책은 경쾌해서 좋고, 단어와 문장, 행간의 의미를 여러 번 생각해야 이해가 되는 조금 어려운 글도 꽤 어려운 퍼즐을 풀어낼 때처럼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마치 글씨를 마음속에서 꼭꼭 씹어서 먹으며,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는 기분이다. 이렇게 종이, 그 위에 검은색 글씨라는 단순한 요소로 이루어진 책은 담백하고 꾸밈이 없고 단정하다. 아무리 마셔도 또 나오고 나오는 깊은 산속 어느 깨끗한 샘물처럼 나의 지적인 목마름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작가의 생각이나 생활 방식이 비교적 그대로 드러나는 에세이를 쌓아놓고 읽으며, 글 속 그들의 삶에 들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공감하고,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좋은 책을 하도 많이 읽다 보니 이제는 나도 좋은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야무진 꿈이 생겼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마흔이 지나면서 '나도 이제는 그런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졌다. 그래서 하루에 한편씩 글을 쓰는 훈련을 하고 있다. 박완서 선생님이'나목'으로 등단하셨을 때의 나이가 되어 나도 글을 쓴다고 혼자서 기뻐한 적도 많았다. '맞아. 그분도 아이를 넷이나 키우시고 나서 비교적 늦게 글쓰기를 시작하셨댔지.' 언어를 완전히 장악하여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아도 작품 되게 하는 작가의 등단 시기와 지금 내 나이가 비슷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가당치도 않은 동일시를 하곤 한다. '박경리 선생님도 손자를 등에 업고 창문에 원고지를 대고 마감 날짜에 쫓겨가며 글을 쓰셨댔어.' 하면서 아이를 재우고 나서 졸린 눈을 비비고 글을 쓰는 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위로해 주었다.


지난 몇 달간 하루 두세 시간 글쓰기를 하며 가족들에게 "나 지금 굉장히 예민하거든. 좀 조용히 해줄래?" 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포스로 키보드 자판을 누르며, 인상을 팍팍 쓰고, 신경질을 부렸다. 한 가지의 주제로 간신히 에세이 한편을 쓰고 나면, 문득 아까 부린 짜증이 생각나서 금방 창피해져 멋쩍은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좀처럼 글감이 떠오르지 않고, 나의 단조로운 사고방식에 질릴 때면, 천재 작가들이 해주는 삼국시대 이야기, 조선시대 여성의 굴곡진 삶에 관한 이야기, 한국전쟁 이야기, 평범한 여성이 일탈을 꿈꾸며 친구와 작당하여 사고를 치는 이야기 책을 편다. 그 속에 빠져들어, 작가들의 인물에 대한 서술,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나의 시각을 덧입혀본다. 작가의 독자들을 향해 건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에 답도 해보고, 그들의 책에 실어 보내는 따뜻한 위로에 힘을 얻는다. 고인이 되신 분들의 생각과 문체가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에는 아쉬운 마음으로 그분들이 남기고 가신 책을 편다. 그분들의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없지만 생전에 남겨놓으신 전집 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풍성해진다.


내가 10년, 20년, 30년 꾸준하게 써놓은 글들이 어느 누군가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살아 숨 쉬는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엄청난 꿈을 꾸어본다. 깜깜한 밤, 작은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조금씩 써 놓은 이야기들이 내가 죽은 후에도 어딘가에 남아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다면 더 없는 영광일 것이다. 누군가 남겨놓은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이루고 싶은 희망이 되고, 살아가는 용기가 된다. 그것이 바로 작가에 의해 남겨진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일 것이다. 나도 그런 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기를 마음을 다해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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