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극장'이란...

문턱이 낮았던 다정한 공간

by 김하예라


나에게 영화관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활짝 열려있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콘서트나 뮤지컬, 오페라를 관람하기 위한 극장은 입장료가 꽤 비싸 일 년에 몇 번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영화관은 적은 금액으로도 만족도 높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문턱이 낮은 휴식의 공간이었다. 좋아하는 영화를 커다란 화면과 멋진 사운드로 즐길 수 있는 곳, 달콤한 팝콘이나 사이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버터구이 오징어를 먹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독립영화나 크게 흥행되지 않은 영화도 일부러 찾아서 보곤 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난 그날의 날씨, 누구와 갔는지,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극장은 나에게 잠시 나라걱정도 잊게 만들었던 곳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끝나고 교회 선생님이 그 유명했던 영화, '타이타닉'을 종로의 단성사라는 극장에서 보여주셨다. 한복 디자이너라는 예쁜 직업을 가지고 계시던 예쁜 선생님과의 영화관 데이트는 참 신나는 일이었다. 시험공부 열심히 하면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동기부여가 잔뜩 되었던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비가 오는 날이었고, 나는 청바지에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과 만나서 영화를 보고, 함께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사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IMF 여파로 구제금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며 하나 같이 애쓰고 걱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산 영화 '타이타닉'의 엄청난 흥행을 우려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면 금 모으기로 모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미국에 퍼주는 꼴'이라는 어른들의 걱정도 많았다. 어른들의 한숨 섞인 우려를 들으며, 나라를 위해서라면 전 세계적 흥행을 하는 영화라 하더라도 보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잠깐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철없는 고등학생이던 내가 뭘 그렇게 나라 걱정에 끝까지 심각했겠는가. 그저 교회 선생님이 시험 끝난 기념으로 보여주신 영화, '타이타닉'을 보며 당시 리즈시절로서 엄청난 연기력과 미모를 자랑하는 남자 주인공 배우, 디카프리오에게 반하고 말았다. 나라를 위한 금을 모으기는커녕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열심히 그의 사진이 실린 엽서, 영화 포스터, 잡지를 사서 모으곤 했다. 극장은 나라 걱정도 잊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극장은 파스타집과 함께 데이트의 필수 코스로서 이성친구와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저 평범했던 일상이 두근두근 설렘과 심쿵의 총천연색 봄날로 바뀌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었다. 혹시 마음에 드는 그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다가 주말 약속을 잡는다면? 그러니까 토요일 12시쯤 만나서 종로 소렌토에서 파스타를 먹고,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조금 더 걸어서 '반줄'이라는 유명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면? 그것은 곧 그와 나의 '1일'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대학교 전공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매점에서 캔커피 하나씩 사서 홀짝홀짝 마시던 중 누군가 '나 이번 주말에 누구랑 영화 보기로 했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녀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시작된 것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마시던 캔커피를 일제히 탁자에 내려놓고 "야!! 뭔데? 둘이 사귀기로 한 거야?" 하며 꺅꺅 소리를 치며 웃으며 함께 좋아했던 기억도 난다. 그처럼 극장에서의 영화는 썸의 끝이자 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즐거운 상징이었다.


다정하고 설렜던 극장, 나는 또 언제쯤 육아에서 자유로워져서 마음 편안하게 그곳에 가서 영화를 즐길지, 어떤 추억을 만들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은 오랜 시간 동안 내 마음에 편안하고, 미안하고, 또 설레는 감정을 선물해 준 극장에서의 추억을 이렇게 되짚어 볼 수 있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더불어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나의 10대, 20대의 소중한 추억의 장소, 단성사와 서울극장에 아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해 본다. 마지막으로, 그곳에 에 함께 갔었던 나의 연애사 속 그들에게도 마음속으로만 안부인사를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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