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꽃이 삐었습니다!

by 김하예라


지난 여름만 해도 동동이는 어린이집 친구들에 대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동동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동동이는 말 없는 아이, 혼자 노는 아이였다.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 듣고 소화를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른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이를 하는 동안 혼자서 블록놀이를 하고 있을 아이의 뒷모습을 떠올리니 명치끝과 목구멍에 무언가가 콱 하고 걸린 것 같았다. 보통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한 시간 정도 숲길과 냇가 주변을 산책하는데, 그날은 아이를 위한 기도가 나왔다. 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 동동이와 놀아주세요. 지금 이 시간, 아이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게 함께 있어주세요....'


사실, 나는 안 그래도 어디 가서 그동안 언어와 사회성 발달이 또래 보다 느린 아들을 키우며 겪은 설움과 걱정, 근심을 떠올리며 큰소리로 울고 싶었다. 한바탕 울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도 같았다. 애석하게도 내가 마땅히 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마침 그날은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이라 냇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꽤 컸고,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았기에 한참을 걸어다니며 목 놓아 울었다. 나중에는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더니 오히려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다. 다행이었다.

돌아오는길,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기다리기로 했다. 어쩌면 어린이집에서 어느 마음 착한 친구가 동동이에게 말을 걸어줄지도 모르고, 같이 놀자고 동동이의 손을 잡아끌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리고 동동이가 마음을 열어 친구에게 먼저 뚜벅뚜벅 다가가서 같이 놀자고 하는 날이 바로 오늘, 지금 이 시간일지도 모르는 일이라면서. 그리고 친구가 없더라도, 내가 그 아이의 제일 친한 친구가 얼마든지 되어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한 달 사이, 동동이는 거짓말처럼 한국어 습득 속도가 빨라졌다. 단어를 곧잘 모방하더니, 이제는 문장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잘 따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나중에 스스로 발화를 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이는 나에게 우유, 빵, 사과, 포도, 오렌지, 밥 등을 달라고 하거나, 더 달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친구들과 교회에서 어린이 찬양에 맞추어 율동을 하는 모습을 1주일에 한 번씩 동영상으로 보는데, 매주노래하는 목소리가 커지도 율동도 제법 비슷하게 따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동이가 이렇게 말했다.


"마미! 고구마 꽃이 삐었습니다!"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고구마 꽃이 왜 삐었을까... 고구마 꽃을 어디에서 봤을까?.. 그러다 문득 어느 문장이 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동동아, 엄마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할까?"

"네!!!"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가위바위보를 하여 술래를 뽑을 준비를 하였다.


아... 그거였구나!!! 흥분한 나는 서재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남편까지 불러서 열심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쳤다.


엄마인 내가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되지. 고구마 꽃이던, 무궁화 꽃이던 맨드라미 꽃이면 어떤가. 발음이 부정확하면 뭐 어떤가. 알아들은 내가 다시 바르게 가르쳐주면 되지. 동동이가 나에게 놀이를 하자고 '말'을 했다는 그 자체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했다. 심지어 지난주에는 선생님으로부터 동동이가 반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숨바꼭질'을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동동이가 드디어 블록만 하던 시선을 돌려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냇물 흐르는 소리에 기대어, 울며 기도했던 엄마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걸까. 그렇게 집에서 '고구마 꽃이 삐었습니다' 놀이를 한 이후로, 동동이는 놀이터에서 두 살 많은 어느 누나와, 같은 반 친구 현진이랑, 이름 모르는 어느 동생과 함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였다. 나 역시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수없이 무궁화 꽃을 외쳤지만 지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놀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줄만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동동이를 키우면서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음을 배웠다. 그리고 아이의 성장에 대해서는 아주 작은 부분도 무조건 감사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어린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면서 눈을 마주치고, 깔깔 웃는 웃음소리이다. 킥보드를 타면서 앞에 가는 친구를 목청껏 부르는 목소리,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숨바꼭질의 술래를 뽑는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Mommy, Let's play hide and seek. 쑴바꼭찔 해요!"


그만 써야겠다. 아이랑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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