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A
오늘 원래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오전에 출발하여 여동생 네 가려고 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사는 동생에게 가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커피 한 잔 얻어 마시며 그동안 밀린 수다를 떨 생각이었다. 굉장히 오랜만의 평일 브런치 약속이었다. 혹시 동생과 놀다가 시간이 생각보다 늦어질 것을 대비하여, 딸 다홍이에게 하굣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동동이를 좀 데려오라는 부탁도 해놓은 상태였다. 다홍이는 결의에 찬 눈빛과 다부진 목소리로 엄마는 전혀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그런데 새벽에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다음에 만나자고 했다. 많이 아쉬웠다.
Plan B
계획이 변경되었고, 나에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약 여섯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미용실에 가려고 했다. 샴푸해 주시면서 피곤에 지친 나의 두피를 세게 꽉꽉 눌러가며 시원하게 지압해 주는 담당 미용사의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요즘은 머리카락 한올이 아깝고 아쉽기 때문에 두피에 영향을 미치는 염색이나 파마는 되도록이면 안 하고, 커트만으로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줄까 싶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오는 길에 미용실에 예약전화를 걸려고 하는 순간,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동동이의 왼쪽 눈이 빨간데, 아무래도 안과에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호출 전화였다.
Plan C
결국 나는 발길을 돌려 어린이집으로 동동이를 데리러 갔다. 아침에는 몰랐는데, 정말 왼쪽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미리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둔감함을 탓하며, 아이를 데리고 안과로 향했다. 안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며 담당 의사에게 여쭈니, 전염시키는 눈병은 아니고 단지 알레르기 체질인데, 동동이가 눈을 비벼서 빨갛게 된 것이라고 눈약을 처방해 주셨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다시 보낼까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어린이집에서 장난감 만지고, 산책하며 흙 만지고 놀다가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빌까 싶어서 그냥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다. 안과에서 나와 빵집에 데리고 가서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마들렌, 우유, 아메리카노를 샀다. 어린이집을 빠지고, 엄마와 함께 빵집에서 좋아하는 빵을 먹는 동동이의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였다. 함께 간식을 먹고 나서 근처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책도 빌리고, 동동이에게 책을 읽어줄 생각이었다. 걷기에 정말 딱 좋은 날씨였다. 아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린이 도서관과, 문헌정보실은 휴관이었다. 오늘이 정기 휴관일인 것을 몰랐다.
Plan D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아이 손을 잡고, 2층 문헌정보실과 이어지는 실외 휴게실에 갔다. 넓은 정자가 있었고, 곁에는 푸른 나무가 아름드리 심기워져 있었다. 산과 이어진 실외 휴게실은 답답했던 나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해주었다. 따뜻한 햇살이 동동이에게 내리 쐬고, 아이는 나무 주변을 뱅뱅 돌며 즐겁게 뛰어놀았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너른 마당에서 동동이는 마음껏 놀다가, 벤치에 앉아서 나와 셀카를 찍고, 슈퍼에서 산 양파깡을 사이좋게 나눠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콩나물국, 닭장 조림, 김치, 소시지 볶음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나는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를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
Plan the Best!!!!
생각해 보니, 여동생과의 약속이 어긋나서 아쉬웠지만 나는 아이를 곧바로 안과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 줄 수 있었다. 혼자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아들과 함께인 것도 즐거웠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지는 못했지만,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자 점심을 먹을 때는 라면으로 때울 때도 많은데, 아들이 있으니 이것저것 준비해서 제대로 차려서 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의 어긋한 계획들이 하나의 글감이 되어 이렇게 하루치 글을 오후 세시도 안된 시간에 끝마쳐 가고 있다.
우와. 오늘 나에게 있어 플랜 B, C, D는 없었다. 모든 것이 플랜 베스트일 뿐이었다. 오늘의 날들이 모여 모든 날이 되겠지. 살아있는 이날들은, 계획이 실패했건, 성공했건 상관없이 지나고 보면 모두 플랜 베스트였을 것이리라 믿어본다. 그러니까 삶은 끝까지 다 살아봐야 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