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만났을 때

by 김하예라

아, 나도 좀 용감해지고 싶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 몇 년 전, 내가 굉장히 즐겨 봤는데, 특히 여주인공 동백이(공효진 분)에게 감정이입을 해가며 열렬히 응원했다. 동백이는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보육원에서 자랐고, 커서는 싱글맘이 되어 여덟 살짜리 아들을 홀로 키우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심히 주점(오직 술과 안주만 파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아들에게 야구도 시키고, 학원도 보내고, 훗날 제주도에 분점도 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동백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참 멋지고, 대단하고, 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마을에 '까불이'라 불리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데, 살인의 다음 타깃이 동백이가 되었고, 그것을 알게 된 동백은 너무 겁이 나서 마을을 떠나려 했다. 그때, 동백을 고아원 앞에 버렸다가 (치매에 걸렸다는 설정으로) 다시 딸 앞에 나타난 어머니(이정은 분)가 딸의 등짝을 세게 한번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야! 제발 쫄지 좀 마라! 쫄지 좀 마."


그 대사가 어찌나 내 마음에 강하게 와닿던지.... 작은 일에도 조마조마하며 마음을 졸이는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굳이 내 앞에 끌어다 놓고 걱정을 하곤 했다.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이 도드라지게 나타났다. 사실 동동이의 언어발달이 늦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직접 언어치료사를 찾아가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 그것도 어린이집 원장님이 엄청 빠르고 급하게 아이의 발달검사를 의뢰해서 진행하시고, 언어치료센터를 연결시켜주셔서 올해 1월부터 치료를 시작했던 것이다. 겁이 많은 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만 힘들어하고, 밤새워 걱정하기만 할 뿐이었다. 아이가 얼마나 느린지, 왜 느린지, 어떻게 느린지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실체를 바라보는 것이 무척 두려웠다. 남들에게 말할 때는 아이의 말문이 트일 때까지 '기다린다'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이의 느린 발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피하고 있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어려움이 찾아오게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가면 된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 아이의 발달 문제는 유독 직면하기가 어려웠다.


원인을 찾아내면, 해결책도 나온다.


동백이 엄마가 말한 것처럼, 쫄지 좀 말고, 용기를 내서 문제를 직면하면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동동이는 언어치료사 선생님께 1월부터 언어치료를 받았다. 그분이 3개월간 꾸준히 아이를 관찰 및 치료를 진행하며, 아이의 수용 언어 (언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는 또래와 비슷하거나 같은데, 표현 언어(언어를 직접 말하는 것)는 또래보다 2년 정도 느리다는 소견을 말씀해 주셨다. 2개월을 더 관찰하며, 아이의 언어 발달이 느려지는 원인이 사회성 발달과 아이의 심리상태, 그리고 타고난 성향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셨다. 아이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흥미 있는 단어만 말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감이 있는 영어 단어와 영어 문장을 주로 말했으며, 한글은 자신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의 단어만 말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아이의 인지발달이나, 조음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만 선별적으로 하려는 아이의 성향' 때문이었다. 아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나오고 나니 마음이 정말 편했다. 아이의 지능과 인지, 그리고 발음에 문제가 없다는 선생님의 소견도 나의 마음을 안정되게 해 주었다.


언어치료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동동이를 도울 계획을 짰다. 동동이는 지금처럼 어린이집에서 여러 친구들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할 것이다. 담임선생님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어서, 아이의 성향을 알려드리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또한 언어치료를 통해 아이의 표현 언어를 이끌어내고, 놀이치료를 병행하여 타인과 의사소통하며 어울리는 것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을 북돋아 주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지나친 경계를 허물고, 자연스럽게 놀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아이는 타인과 놀이를 하기 위해 적극적인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느끼며, 표현 언어를 자연스럽게 발달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갔다. 발전했다.


이렇게 문제를 직면하고, 전문가와 상의를 하면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해답이 나오는데, 나는 혼자서 걱정만 껴안고 살았다. 이제는 내 삶에 다가오는 예측할 수 없었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시하려고 한다. 아들에게 생긴 사회성과 언어발달의 문제를 직면하고, 받아들여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선행되어야 할 것은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월령에 맞게 딱딱 발달하고, 누가 봐도 똑똑하여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그야말로 완벽한 아이를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이켜 반성해야겠다.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하여 아이가 가진 고유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무엇을 그리도 걱정하고 두려워하였을까.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아직도 기회가 많이 있고, 젊다. 그리고 내가 키워야 할 아이들은 아직 어리다. 아이를 키우며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매일 성장하는 내가 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제, 문제를 마주할 용기를 내자.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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