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습니다.

by 김하예라

십 여년전, 어린 딸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을 때에, 나도 다른 엄마들과 곧 잘 안면을 트고, 대화를 하곤 했다. '아이가 몇 개월이냐'를 묻는 문장을 시작으로, 형제는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 육아는 힘들고 어렵다든지 하며 모르는 어머니들, 할머니들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다.


아마도 내가 '개월 수' 질문에 환히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운 좋게도 나의 딸의 발달이 흔히 말하는 '정상 범주'에 들었기 때문이리라. 말도 빠르고, 사회성도 좋아 처음 보는 언니들과도 금방 친구가 되어 함께 어울려 놀았다. 거기에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놀기까지 하니, 아이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자랑스러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이들의 ' 아이 몇 개월이에요?'라고 묻는 질문에 "00개월이에요."라고 말하면 "어머! 그런데 저렇게 똘망똘망하게 말도 잘하네요!"라는 대답과 반응에 신이 난 나머지 그들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아이의 발달이 곧 나의 발달이었다. 아이가 언제 기고, 앉고, 서고 걷는지, 어떤 어휘를 구사하는지는 내가 얼마나 유능하게 육아를 잘 하고 있는 것인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을 때에 예전에 자신감 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오직 내 아이와만 눈을 마주치는 내향적 엄마가 되어 있었다. 딱 봐도 내 아이와 비슷하거나, 내 아이보다도 개월 수는 적어 보이는 아이들이 또박또박 말을 하고, 그물도 거침없이 건너며, 서로 한데 어울려 신나게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속이 상했기 때문이다. 동동이는 무서워서 한 발짝 내딛는 것도 못하는 그물 사다리를 번쩍번쩍 앞서 건너가면서 '야, 비켜!'하는 한 아이의 말에도 상처를 받았고, " 아줌마(나한테 아줌마라고???), 쟤는 왜 말을 안 해요? 몇 살이에요? 저는 말 잘하는데..." 하는 한 남자아이와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살짝 웃고 있는 한 엄마에게서는 완전 재수 없음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 정해놓은 '영유아 발달' 의 표준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느린 발달 지표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키우며,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의 언어습관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되었다. 딸을 키울 때, 내가 그동안 수없이 묻고 또 답했던 '몇 개월이에요?"라는 질문에 대해 반성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뼛속까지 습관으로 베여있는 나는 그 집 아이가 내 아이보다 빠른가 느린가를 자동으로 측정하고 판단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아이가 내 아이보다 빠르면 부러워하고, 느리면 우월감을 느끼는 참 유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별생각 없이 그냥 물어본 질문조차 상처가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배려 따위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놀이터에서 자주 마음이 아팠던 나는 이제. 각자의 사정과 상황을 모르면 그저 조용하게 말을 아끼는 것이 실수를 줄이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숫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 점점 상식과 매너가 되어가는 요즘이다. '몇 평 아파트에 사는지, 차는 몇 CC를 타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이번에 딸의 수학 내신이 몇 등급 나왔는지, 몇 살인데 아직 미혼이냐든지' 하는 질문은 돈 내고하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처럼 영유아의 엄마에게 '아이 몇 개월이에요?'라는 질문도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 같은 소심한 데다가 육아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엄마는 그 질문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씩씩하게 미끄럼틀을 타고, 구름사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고, 지난번에는 무서워서 못 탔던 그네를 오늘은 용기 내어 타는 아이들의 건강한 모습에 경탄해 주면 좋겠다. 비교의 시선보다는 각자의 성장 시간표에 따라 오늘도 부지런히 자라는 중인 아이들의 귀여운 뒷모습을 바라보며 열심히 응원의 박수를 처 주는 어른이 되면 참 멋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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