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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Sep 28. 2022

떼인 돈, 36만 원의 교훈

어느 20대 여자의 피, 땀, 그리고 눈물

대학을 갓 졸업하여 사회생활 경험이 별로 없던 미숙한 내게 자그마한 상가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할 기회가 주어졌다. 중, 고등학교 시절, 약 5년간 나에게 영어와 수학을 무료로 가르쳐주셨던 학원 원장님인 친척 오빠의 학원에 가서 한 달간 '원장 견습'을 받고 영어학원 운영을 시작했다. 학부모를 상대하며 내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없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 머리는 살짝 파마를 하고, 정장 스커트와 셔츠차림의 스타일을 하며 마치 내가 30대인 듯 '성숙한 척'을 한곤 했다. 실력 있는 영어학원 원장의 모습은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에서도 시작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원 운영은 나에게 주어진 귀한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단순하고 무식하게' 학원을 성장시켰다. 학원 전단지에 사탕을 붙여서 초등학교 앞에 나가 나눠주고, 전봇대마다 전단지를 붙여놓기도 했다. 목이 터져라 아이들을 가르쳤고, 학부모 상담도 정성껏 했다. 점심과 저녁 먹는 시간만 제외하고, 학원에 밤늦은 시간까지 머물며 수업준비, 원생 관리에 노력을 다했다. 아이를 낳아본 적도, 길러본 적도 없는 내가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나의 절실함과 진심과 성실이 통했을까. 감사하게도 이름 없는 작은 영어학원에 수많은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30대처럼 보이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로는 30대가 가진 경험과 연륜까지 얻을 수는 없었다. 미숙했던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여러 가지 실수를 참 많이 했다. 그중 가장 생각이 나는 것은 세 자매의 한 달 치 수업료를 떼인 사건이다. 그때만 해도 학부형들이 원비를 결제할 때 신용카드나 계좌이체보다는 '원비 봉투'를 사용했다강사는 학생의 한 달 동안 공부한 학습지, 시험지, 활동지, 성적표를 원비 봉투를 함께 보냈다. 그러면 학부모들은 성적표에 학부모의 의견을 써 주시고, 원비 봉투에는 학원비를 넣어서 아이 편에 보내주셨다. 그러면 학원에서는 원비를 확인하고, 월별 확인 칸에 빨간 도장을 찍었고 영수증을 발급했다. 그런데 그 문제(?)의 세 자매 어머니는 원비 봉투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원비 납부 날짜도 잘 지키지 않으셨다. 본인이 원비를 일반 봉투에 넣어 아이를 데리러 오실 때 나에게 직접 주셨다. 그렇게 아이들을 6개월 정도 가르쳤을 즈음, 어쩐 일인지 그 달은 원비 납부 날짜가 한참 지나도 납부를 하지 않으셨다.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다.


"저어.. 어머님, 이번 달 원비를 보내주시지 않으셨는데요..."


"어머나?! 제가 지난번에 드렸잖아요."


이때부터 나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가 실수한 것인가? 장부 작성에서 누락이 되었나? 어떻게 된 거지? 아닌데? 진짜 받은 적이 없는데? 기록도, 영수증도 없는데?'라고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제가 그때, 여기에 서서 원장님 손에 직접 원비를 드렸잖아요?!"


손으로 봉투를 건네는 제스처까지 하시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나는 모든 정황과 기록이 맞지 않다고 차분하게 그러나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을 해드렸다. 그러나 그분은 차분하게 딱 잘라 말씀하셨다.


"원장님, 저는 드렸습니다."


당시 세 자매가 매달 내는 학원비는 36만 원으로 20대 초보 원장에게는 참으로 큰 액수였다. 원비를 이미 냈다고 주장하는 아이들 어머니의 당당한 태도에 나의 대응 방안이라곤 고작 집에 돌아와서 몇 시간을 운 것이 다였다. 억울해서, 속상해서,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펑펑 운 것 밖에 없었다. 어디에 물어봐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혼신의 힘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간과 믿었던 학부모에게 느낀 배신감으로 괴로웠다. 마치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마저 들었다. 


눈이 통통 붓도록 몇 시간인가를 울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배고파.'


울음을 그치고 일어서서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나이 든 것처럼 보이기 위한 파마머리에 정장을 입고, 하도 울어서 부은 눈에는 마스카라가 번져서 검은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립스틱은 지워진 채 서있는 한 우스꽝스러운 여자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참, 그 와중에 배가 고픈 나도 참 신기하고 대책 없는 애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서 입는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국에 밥을 말아서 밥알을 꼭꼭 씹어 넘겼다. 빨간 사과를 하나 씻어서 와그작와그작 소리 내어 먹으면서 나에게 상처를 준 그녀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이걸 어떻게 갚아주지? 소송을 걸어? 그 집에 찾아가서 거실에 드러누워? 신고를 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와 잔혹 소설을 썼다 지웠다 하다가 해 뜰 무렵 마음에 결단을 했다. 다음날, 오전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학원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죄송해요."


그렇다. 난 지나간 일을 덮기로 하고 사과를 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가정통신문을 작성했다. 모든 원비는 계좌 입금, 혹은 카드 결제로 이루어질 것이고 현금으로 원비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더욱 책임감 있게 정성껏 가르치겠다는 다짐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한 달 원비를 내지 않은 아이들을 그때 이후로도  몇 년간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열심을 다해 가르쳤다. 따지고 보면 그 일은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착오이지 아이들의 실수는 아니다. 그리고 선생으로서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임무라 여겼다. 세 자매 중 첫째는 나중에 필리핀에 유학을 갔는데, 거기에서도 나에게 편지를 쓰곤 했고, 둘째 아이는 내 결혼식에도 와서 단체사진에 맨 앞줄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막내는 매해 스승의 날이나, 크리스마스 때 'I love you, teacher!'이라고 또박또박 글씨를 쓴 카드를 잊지 않고 챙겨주었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통해 나는 '원칙과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라는 소중한 교훈을 깨달았다. 학원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비 납부가 누락될 빌미를 제공한 것은 바로 원장인 나의 책임이었다. 그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모두 우리 학원에 보낸다는 생각 때문에 고마운 마음으로 그분의 편의를 봐 드렸던 것이 나의 실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분명히 냈는데요.'라는 말이 통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나는 학원비의 현금 납부는 세금신고를 할 때 누락이 되어 탈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당시에는 '현금영수증 제도'도 없었던 때였다. 그리고 '한 달 원장 수습'에서 원비 납부와 세금에 관한 부분은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학원에서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그걸 몰랐다'라는 핑계를 대는 무능한 원장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학원 운영 관련 세미나에 정기적으로 참여하여 운영 전반에 관한 것을 돈과 시간을 내어 다시 배웠다. 모든 원비의 계좌 납부와 카드 결제를 통해 전산상의 기록이 남도록 조치를 했고, 학원의 세금도 세무사를 고용하여 철저하게 신고했고, 납부했다.


누군가의 '편의를 봐준다'라는 것은 처음에는 좋다. 상대의 호의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그날의 '편의'를 봐주고,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것 때문에 서로에게 불필요한 상처를 입힐 수 있고,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의 경험으로 배웠다. '원칙과 일관성'이 있으면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쌓이게 된다. 물론,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나와의 사이에 쌓인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나는 소중한 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칠 수 있었다.


그렇다. 내가 학원을 운영하던 첫해에 떼인 그 36만 원은 20대였던 내가 '원칙과 일관성'이라는 소중한 개념을 배우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참 뜻깊은 수업료였다. 그리고 그때 속상해서, 어찌할 줄을 몰라서 엉엉 울던 나를, 작게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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