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매일 일기를 쓰시나요?
가장 절실하게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글이 술술 써진다. 시험이나 심사, 창업 등을 앞두고 있거나, 아이에게 어려움이 생겨 도와주어야 할 때, 또는 남편과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할 때, 나는 늘 노트를 펴서 나의 감정을 하나둘씩 활자로 옮겨 글로 남겼다. 고3 때 매일 썼던 일기들을 이사할 때마다 잘 챙겨 간직하고 있으며, 유학을 준비하거나 대학원에 다니던 해에 썼던 스케줄러와 일기장도 책꽂이 제일 위 칸에 잘 모셔 놓고 있다. 그러다 유난히 몸과 마음의 힘이 빠지는 날이나, 지금 겪는 어려움이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불안함이 찾아올 때는 몹시 힘들고 절박하던 그 시절 내가 써놓았던 글을 찾아 읽곤 한다.
고3 때 열심히 썼던 일기를 펼쳐보면 그 시절 내 글씨가 작고, 납작했음을 알 수 있다. 글씨체는 딱 그때의 자존감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시험이었던,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매사에 긴장했고 마음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매달 학교에서 보는 모의고사 점수에 일희일비하면서 자신감은 사라졌다. 당시의 일기에는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던 내가 오직 하나님께 지혜와 건강을 허락해 달라는 애절하고 기도문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소원,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느끼던 절망, 혹시 재수를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가득 담긴 일기의 마지막에는 그 당시 꼭 가고 싶던 학교와 학과가 쓰여있다. 그마저도 학교와 학부, 학과의 첫 글자만 딴, 딱 네 글자, '연. 문. 인. 외'. 혹시라도 언젠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네 성적으로 감히 그 학교를 목표로 한다니!' 하며 비웃을 것만 같은 염려와 소심함 때문이었다.
수능을 54일 앞둔 날 썼던 일기에는 어처구니없게도 독서실에서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 생긴 까닭에 '이 마음을 부디 없애 주십시오. 제가 지금 이럴 때입니까?'로 시작되는 하소연이 쓰여 있었다. 몇 장을 더 넘겨보니, 깎아놓은 밤톨처럼 귀엽고 예쁘장하던 그 남학생의 얼굴에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여드름이 돋아났다는 글이 이어졌다. 독서실 휴게실에서 그의 얼굴에 난 빨간 여드름을 보고는 그만 정이 뚝 떨어져 버렸고, 그를 향한 마음을 깨끗하게 거둬들이고는 산뜻한 마음으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기 속에 나타난 열여덟의 나는 성적 때문에 자주 절망했으며 동시에 이루고픈 부푼 꿈과 소원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때의 소망이 꽤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딱 네 글자로 줄여서 썼던 희망 학교에 갈 수는 없었지만, 다른 학교의 원하던 학과에는 입학할 수 있었다. 수줍게 써 내려갔던 소원대로 영어를 전공할 수 있었고, 외국인 통역이나 번역도 마음껏 해 보았고, 10여 년 뒤에는 결혼도 하고, 그 후에는 예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당장 다음 달의 모의고사 성적도 어찌 될지 몰라 불안했던 그 시절에 함께해 준 일기는 나의 현재이자 미래였고,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속 깊은 친구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무엇을 두려워할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테니스공 혹은 탁구공 같은 사춘기 딸을 걱정하는가? 말도 느리고, 말도 안 듣는 다섯 살 아들을 염려하는가? 난데없이 사업을 하겠다고 열심히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는 중년의 남편을 걱정하는가? 나의 이 걱정들도, 그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소망도 이렇게 글로 적어 남겨 보면, 십 년, 이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웃으며 다시 읽어볼 날이 오겠지. 마흔 언저리의 내가 그토록 걱정하던 것들과 바라던 꿈들이 결국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며 '거봐! 내가 뭐랬어. 다 잘 될 거라고 했지?'라고 흐뭇하게 웃고 있을 좀 더 나이 든 넉넉한 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