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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Sep 22. 2022

나의 아름다운 영어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한 편의 영화와 한 명의 배우

중학교를 입학하던 해 2월, 난생처음 영어를 배웠다. 26개로 이루어진 알파벳의 대문자와 소문자를 구별하여 쓰고, 단어를 읽고, 철자를 외우기까지 꽤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각 알파벳의 발음을 어떻게 읽는지 나타내는 발음기호를 암기해서 발음을 익혔다. '발음기호'역시 나에게는 생소한 문자였고, 해독해야 할 암호 같았다. 발음기호에 따라 단어를 입으로 소리 내어 읽고, 노트에 빼곡하게 쓰면서 철자를 외웠다. 발음 기호를 적용해 봐도 도대체 잘 읽을 수 없던 어려운 단어도 많았다. 'children'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던 아이에게 물어보았고, 그 애가 가르쳐준 발음을 한글로 '췰드런'이라 써서 반복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어라는 거대한 벽 앞에 외롭게 서 있던 내 앞에 한 분의 완벽한 선생님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실, 그녀는 정식 영어 선생님은 아니다. 나는 그녀를 알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나를 모른다. 그녀는 바로 Julie Andrews라는 영화배우이다. 중학교 1학년 1학기가 끝나갈 즈음이던가. 어머니께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nud of Music)'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오셨다. 그날 밤,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그 영화를 함께 보았다. 그런데 나는 그만 충격에 휩싸였다. 영어가 그렇게 매력적이고, 부드러운 언어라는 것을 난생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인공 마리아 선생님의 언어는 흐르는 물처럼 부드러웠고, 명확했고, 우아했다. 마리아 선생님과 일곱 명의 아이들이 함께하는 노래는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만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영어에 노출이 되지 않아, 제대로 단어조차 읽지도 못했던 한 여자아이의 마음에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은 '나도 저 노래들을 다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마리아 선생님처럼 영어 발음을 할 때까지 죽도록 연습하리라!' 하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 녹화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적어도 300번 이상 반복하여 보았다. 영어 그 자체에만 몰입하여 듣고 싶을 때는 A4용지를 반으로 접어 TV 화면 하단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한국어 자막을 가리는 아날로그적 방법(?)을 사용했다


한국인 영어 선생님의 한국어와 비슷한 영어 발음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마리아 선생님의 발음처럼 말하고 싶었다. 어렵게 영화 대본을 구해서 한 문장 단위로 비디오를 멈춰가며 대사를 따라 했다. 영어 말하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연음과 악센트의 표준을 마리아 선생님의 발음에 두고 수없이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사가 외워졌다.


마리아 선생님 덕분에 나는 이제 더 이상 반 친구에게 영어를 어떻게 읽는지 물어보고, 한국어로 영어 발음을 써놓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리아 선생님처럼 말하기 위해서는 단어와 문법도 잘 알아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서의 영어성적도 올랐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영어 성적은 49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였지만, 고등학교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본 영어시험에서는 문법, 독해에서는 만점을 받았고, 듣기 평가에서 단 한 문제를 틀렸다. 나만의 일타강사이던 마리아 선생님 덕분이다. 


좀 더 철이 들고나서, 다시 영화를 보았을 때는 단순히 노래뿐만 아닌, 마리아 선생님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이 보였다. 엄마가 없는 일곱 명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따스한 눈빛과 환한 미소에 매료되었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노래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의 태도에 반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고 생각에 잠기곤 했다. 마리아 선생님에 대한 나의 동경은 그녀와 비슷한 교육철학 가진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내가 학부와 대학원에서 영어와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영어 선생님이 되었을 때에는, 그녀처럼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짧은 커트머리를 5년 정도 유지했던 기억이 난다. 가르쳤던 반 아이들에게 그 유명한 Sound of Music OST를 가르쳤다. 우리 반은 아이들과 나의 노랫소리로 행복했고, 즐거웠다. 우연히 보게 된 좋은 영화 한 편의 영향으로 나는 마리아 선생님과 약간은 비슷한 영어 발음을 가지게 되었고, 전공과 직업까지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Julie Andrews 펜 페이지에 가입을 해서 종종 그녀의 소식을 보고 듣는다. 여전히 건강하게 지내고 계심에 무척 감사해하면서 말이다. 이제 나는 새로운 꿈을 꾸어 본다. 할머니가 되어도 저렇게 우아하고 건강한 미소와 맑은 눈빛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미리 자주 웃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좋은 책을 많이 읽고, 행복해지는 글을 자주 써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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