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예라 Sep 20. 2022

네 마음 말고 내 마음

지나가는 행인 1의 말은 '건너뛰기' 하세요. 

대학원에서 TESOL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을 즈음, 나는 대형 학원은 어떻게 홍보와 마케팅을 하며, 어떻게 학생과 학부모 관리를 하는지, 어떤 영어 교재를 사용하고, 강사 교육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내가 학원을 운영한 방식이 맞는 것인지 점검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학원이 성장할 수 있는지 더 배우고 싶고, 많이 발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대학을 졸업 후,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온 동생에게 나의 20대를 바쳐 열심히 가꾼 나의 영어학원을 넘겨주었다. 내가 학원 운영을 시작하기 전, 친척오빠의 학원에 가서 '원장 견습'을 받았던 것처럼 나도 동생에게 몇 개월에 걸쳐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동생이 안정적으로 학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준 후, 나는 교육열로 유명한 목동의 한 복판에 있는 특목고 입시 전문 학원에 이력서를 내고 서류전형, 시강, 임원면접에 통과했다. 강사로 일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도전을 해보기로 했고, 운이 좋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궁금했던 큰 물, 대형학원에서 약 3년간 경험을 쌓고 퇴사를 결심했다. 다시 새롭게 학원을 개원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쩌면 20대 때보다는 훨씬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에게 꼭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또 신뢰해 주시는 열혈 학부모님들도 계셨기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내 안에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20대 초반에 그러했듯 이번에도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로 결정하고는 조금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에서 학원을 오픈할까 고심하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 재개발이 끝나고 입주가 시작된 지 약 8년 정도 된 곳이었다.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30대에서 50대 사이의 인구와 당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몇 명이 되는지 확인했다. 주말마다 뉴타운 안에 있는 4개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안의 모든 상가를 찾아 돌아다녔다. 지하철 입구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서서, 때로는 자동차 안에 앉아서, 실제 이동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일일이 헤아리고 기록하는 주먹구구식 시장조사 방법도 사용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증금과 월세가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오기에 쉬운, 접근성이 뛰어난 상가를 찾아다녔다. 


여러 날의 노력 끝에 드디어 초등학교 정문에서 도보로 3분 거리인 아파트 앞의 상가 2층에 비어 있는 점포를 발견했다. 같은 건물에는 수학학원,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세탁소, 편의점, 식당이 있었다. 저녁 8시쯤 가보니, 군데군데 빈 점포로 절반 정도는 불이 꺼진 채 어두웠다. 이 상가 건물은 아직 활성화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하철 바로 옆에 있는 대형 상가보다 보증금과 임대료가 절반 정도 싸기 때문에 내가 감당할만했다. 나에게 있어 호랑이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월세'였기에, 처음부터 내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임대료를 지출하지 않기로 했다. 근처에 자리한 초등학교와 아파트 단지가 있었기에 학원생은 보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잘 해내면 학원이 망할 리는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학원 점포 계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포와 상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다 며칠간 눈인사만 몇 번 주고받았던 세탁소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셨다.


"여기에는 뭐 하려고 왔어요?"

"네, 영어학원 오픈하려고요.."

"거기는 뭐 생기기만 하면 망하던데.... 차라리 좀 더 사람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상가가 낫지 않겠어요? 나도 여기에서 세탁소 운영하기 너무 힘든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정말 내가 이곳에 학원을 열어도 될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목동의 학원에 사직서를 낸 것은 아니므로 그곳에서 계속 영어강사를 하는 게 차라리 나은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싶은 생각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가뜩이나 걱정, 근심, 염려가 많은 내게 세탁소 사장님의 총채로 먼지를 털면서 무심결에 몇 마디의 말은 엄청난 파급력이 있었다.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단 근처의 카페로 갔다. 따뜻한 카모마일 티를 마시면서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해할까? 지나가는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이토록 귀를 기울이고, 나의 모든 결정을 뒤엎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정말 그랬다. 나의 경험상, 학원을 학생들이 좋아하는 따뜻한 분위기로 깔끔하고 예쁘게 꾸미고, 효과적인 영어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을 제대로 관리하고 가르치며, 학부모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이면 망할 리는 없었다. 또한 학원은 식당과 달라서 반드시 1층 혹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을 필요는 없다. 강사가 잘 가르치는 것으로 입소문이 난다면 학원이 변두리의 어느 후미진 곳에 있어도 학생과 학부모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결국 나는 세찬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원래대로 임대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기는 뭐가 생기기만 하면 망하던데..' 하던 세탁소 사장님의 예측은 빗나갔다. 결국 내가 운영하던 학원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1년 사이에 같은 상가 건물에 프랜차이즈 영어학원과 수학학원, 독서논물학원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리 학원 학생들이 새로 생긴 영어학원으로 옮겨갈까 봐 걱정하긴 했지만,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곳은 더 이상 비어있는 점포가 없이, 오고 가는 학생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지는 활성화된 상가로 바뀌었다. 


두 번의 학원 창업과 운영의 경험에 의해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 그 결정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부하여 지식을 쌓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실행하면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누구나 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이의 조언 혹은 의견이 내 결정의 결정적 이유가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상권 분석, 고객의 요구, 예상되는 어려움이나, 실적, 내가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크게 고민 없이 하는 말, 다 네가 걱정돼서 한다는 말, 네 나이가 너무 적다 혹은 많다는 등의 말에는 그저 참고만 할 뿐, 너무 그렇게 흔들릴 필요까지는 없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그 결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결정했다면, 이제는 감당할 힘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믿어주기로 하자. 무슨 일을 하든 성공도 실패도 내 몫이다. 분명히 배우는 것이 있을 테니, 결국 플러스의 인생이 될 것임을 잊지 말자. 지나가는 행인 1의 말이 아닌 바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안 그래도 짧은 인생, 더욱 즐겁고 신나게 도전하고 그만큼 많이 이룰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