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하예라 Sep 29. 2022

어느 청바지 가게의 영업비밀

우리 동네 옷가게 사장님의 전략 

우리 동네에 이사 온 지도 4년이 다 되어간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동안 동네 상가에 있던 짬뽕 전문점, 참치횟집, 카페, 초밥집, 와플집 등이 문을 닫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는 새로운 화덕 피자집, 샐러드 전문점, 명품을 카피하여 저렴하게 파는 보세 옷 가게, 프랜차이즈 분식점 등이 생겼다. 하나같이 인테리어에 최선을 다했고, 인기 유튜버와 블로거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인테리어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SNS 광고는 하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어느 독특한 청바지 가게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요즘 청바지는 꼭 이 신기한 가게에서만 산다. 일단, 이 가게는 영업시간이 그야말로 들쭉날쭉하다. 어느 날 가보면 문이 닫혀 있고, 어떨 때는 공휴일,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보통 자영업을 한다면 '주인이 끝까지 같은 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라는 불문율이 존재한다는데, 이 가게의 영업시간은 그야말로 '사장님 마음대로'이다. 자리를 비워놓고도 그 흔한 '외출 중입니다'라든지 '식사하고 올게요'라든지 하는 메모도 붙어있지 않다. 그렇다고 손님들이 떠나느냐? 그렇지 않다. 어느 날, 가게 앞에 여러 벌의 청바지가 빽빽하게 걸려있는 옷걸이가 보이면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간다. 도착해 보면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다른 고객들이 옷을 고르고 있다. 사람을 애타게 했다가 예기치 않던 때에 문을 확 열어주어 달려가게 만드는 그녀는, 과연 고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밀당의 고수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번아웃 증후군을 처음부터 방지한 것이리라.


 '내가 목숨 걸고 하는 장사하는 것은 아니라서요. 그냥 내가 쉬고 싶으면 쉬고 운영하고 싶으면 합니다'라는 그녀의 의연함과 자신감, 패기가 느껴진다.  


처음 이 심플하고 허름해 보이기까지 하는 옷 가게에 갔을 때, '뭐 별거 있겠어?' 하며 옷들을 슬쩍 둘러보았을 뿐,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그저 가게를 한번 휙 돌아보고, 옷이 안 예쁘면 곧바로 나와야지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렇게 옷을 무심하게 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물으셨다. 


"어떤 옷 찾으세요?"

"아, 부츠컷 청바지요."


 사장님은 나를 한번 쓱 훑어보시더니 능숙하게 옷걸이를 착착 넘기시며 그 수많은 청바지 중에서 연청과 진청바지를 한벌씩, 딱 두벌 고르셨다.


"한번 입어보세요."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사장님의 말씀에 얌전히 순종하여 두벌의 옷을 입어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사이즈에 딱 맞았고, 몸에 착 감기는 것이 딱 내 옷이다 싶었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 사이즈, 그리고 색상이었다. 나는 옷을 좋아하면서도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원피스 같은 옷은 뒤 지퍼나 앞 단추 잠그고 거울보고, 다시 지퍼 열고, 풀고 하는 이런 과정에 팔다리가 아프고, 어깨가 결린다. 그런데 그날은 청바지를 딱 두 번 입어 봤을 뿐인데 단번에 마음에 딱 드는 옷을 만난 것이다. 


 "얼마예요?" 

"한 벌은 2만 원, 두벌은 3만 5천 원이요."

"두벌 주세요."


사장님의 말투는 무미건조하였으나 가격이 참으로 친절했다. 결제가 끝난 신용카드를 돌려주시며 '안녕히 가세요!'라며 나눈 인사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내가 필요한 것을 묻고 얻어, 값을 치르고 나오는 데에는 걸린 시간은 15분에서 20분 사이였다. 시간과 신체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비닐봉지에 청바지 두벌을 넣어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오면서부터 이렇게 결심했다. 


'앞으로 청바지는 여기다.'


그 청바지 가게 사장님은 친절하거나 말씀을 많이 하시거나 또 잘하시는 분이 아니다. 정말 할 말만 하신다. 내가 피팅룸에서 옷을 갈아입는 동안 사장님은 옷을 정성껏 다림질하고 계신다. 옷을 입고 나와도 잘 어울리신다던지, 예쁘다던지 하는 칭찬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저 다림질하던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입은 옷이 잘 어울린다 싶으면 시크하게 고개를 두 번 기분 좋게 끄덕이시면 그만이다. 한 번은 왠지 사이즈가 맞을 것 같은 어느 옷을 꺼내서 입어보려고 하면 사장님은 단호히 몇 마디 하셨다.


"그거 작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사장님의 직설적 표현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몸에 잘 맞지 않거나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옷을 점원의 감언이설에 속아 억지로 사 오게 되어 '내가 다시는 거기 가나 봐라' 하며 후회할 일도 없다. 그야말로 청바지의 판매,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하시는 이 여자 사장님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장님의 무뚝뚝한 화법이 충분히 용서(?)가 되는 것은 그분의 마음이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의 마음에 뭔가 선물까지 얻어 간다는 생각이 들게 하시곤 하니까. 한 번은 내가 청스커트를 사러 갔는데 역시 권해주시는 것을 한번 딱 입었더니 역시 어울렸다. 그런데 사장님이 웃으시면서 '이것도 한번 입어보세요. '그래서 입었는데 역시 잘 어울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기분 좋았다. 사장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더니 말씀하셨다.  


"그건 그냥 가져가세요. 내가 기분 좋아서 드리는 선물이요."


나는 살면서 옷가게에서 옷 한 벌을 그냥 받아오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청스커트 한 벌 값에 두벌을 가져오던 그날, 난 고객으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청치마도 앞으로는 여기다.'


사장님은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청바지를 많이 가지고 계셨고, 거기에 손님의 사이즈와 취향을 빠르게 파악하는 타고난 눈썰미를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옷 가게 안에서 완전한 주인이었고, 품질과 디자인, 그리고 가격에 있어 당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더없이 매력적이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하려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감각과 그것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여전하고 꾸준하게 그 일을 하다 보면, 본질에 충실하다 보면 나도 즐거우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 또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비본질적인 것을 꾸미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본질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부지런히 내실을 기르자. 입에 발린 칭찬보다는 차라리 무뚝뚝한 진정성이 더 오래, 더 길게 간다는 것을 잊지 말기로 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