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굉장히 부담스럽고 좀처럼 그 내용에 신뢰가 가지 않는, 마치 신기루와 같은 동요가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작사, 작곡 미상
둥근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래 이 닦자
세수할 때는 깨끗이 이쪽저쪽 목 닦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거울을 봅니다
꼭꼭 씹어 밥을 먹고 가방 메고 인사하고
유치원에 갑니다 씩씩하게 갑니다
아니, 대체 누가 이렇게 기특하고 장하게 유치원에 간다는 말인지 아는 사람 있으면 나에게 말 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아들은 둥근 해가 아무리 중천에 떠도,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나지 않는다. 발바닥을 간지럽히거나, 사랑스럽게 이름을 부르거나, 흔들어 깨워도 마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한밤중인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 가까스로 아이를 일으켜 놓으면, 얼마나 짜증을 부리는지 모른다. 일어나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제일 먼저 이를 닦는다던지, 이쪽저쪽 목을 닦는 일은 없다. 얼굴에만 물을 묻히는 것도 너무 싫어해서, 물티슈로 어린이집 앞 벤치에 앉아 눈곱만이라도 떼어주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스스로 빗는 모습?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빗으로 자기 머리를 건드리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옷도 내가 입혀주며, 아침밥을 싫어해서 우유와 사과만 간신히 먹는다. 아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한다는 엄마인 나는 죄책감에 괴롭다. 어린이집 가방은 단연 엄마가 메고 간다. 그는 계단 내려가는 것조차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헤어질 때, 선생님의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인사하라고 시키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고개 까딱하고 인사한다. 씩씩하게 두 발로 걸어간 지는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이를 세발자전거에 태우고 내가 자전거를 뒤에서 밀면서 등원을 했다. 어린이집은 약간 언덕에 있어서 자전거를 밀다보면 숨이 턱에 차곤 한다. 나이 마흔이 넘은 엄마의 아이 어린이집 등원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고 보니, '둥근 해가 떴습니다'라는 아름다운 동요가 적어도 나에게는 비합리적, 비효율적이다. 동요 속 어린이와 실제 내 아들에 대한 비교하는 마음만 괜히 커진다. 아침마다 '너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이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등원하는 어린이로 언제 키울까 조바심이 나게 만드는 노래는 한동안은 듣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간밤에 수면으로 충전된 에너지의 80%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와 간신히 어린이집 등원을 땀 뻘뻘 흘리며 시켜놓고, 남아있는 20%의 에너지를 가지고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한다. 분명히 어제도 했던 장 보기, 청소, 설거지, 요리, 빨래를 오늘도 한다. 이렇게 매일 규칙적으로 집안일을 함에도 밤 12시가 되면 집안은 원상 복구되어 있다. 거실은 발 디딜 틈 없는 난장판, 설거지통에는 접시가, 빨래통에는 빨래가 가득이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어쩔 때는 이런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혼자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러니 '당신이 집에서 하는 일이 뭐가 있냐는' 남편의 말 같지 않은 말에 아내들은 울분이 차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거칠어지는 것이다. 아..... 매일 하면서도 만족스럽지 못한 이 집안일. 과연 비효율의 끝판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효율적인 일들로 가득 찬 나의 일상이 있기에 가족이 살아간다. 아이들은 매일 청소한 깨끗한 방에서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정리 정돈이 되어있는 깨끗한 거실을 마음껏 어지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오랜 시간 부엌에 서서 요리 한 밥과 국과 반찬을 먹으며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받아 튼튼하게 자라 간다. 매일 깨끗하게 세탁해 준 옷을 입고, 깔끔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학교나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 선생님들과 소소하면서도 찬란한 유년 시절, 학창 시절을 채워간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내 어머니의 그런 비효율적인 노력 덕분에 죽지 않고 생존하여 어엿한 성인이 된 것이다. 누군가의 비효율적 헌신과 노력은 이처럼 누군가를 살린다.
이처럼 비효율적 일상 덕분에, 가끔 겪는 효율적인 일에 대한 감사함이 커진다. 없는 시간을 쪼개 잠깐이라도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지식이 쌓이고,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긴다. 글은 성실하게 쓰면 쓸수록 필력도 생겨서 글 쓰는 이 스스로 성취감을 가끔씩이라도 느끼곤 한다. 시간을 투자하여 영단어를 외우면 그만큼 아는 단어가 생기고, 자동차 운전도 하면 할수록 늘어 핸들이 손에 촥 붙고, 차와 한 몸을 이루어 도로를 다닌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책 읽는 속도는 읽을수록 빨라지고, 쓰는 실력도 그러하고, 단어도 한번 외워지기 시작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에 많은 단어를 순식간에 외우는 것도 가능해진다. 운전도 집 앞 마트만 간신히 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고속도로도 탄다. 이처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 일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신이 나고 즐거운지 모른다.
나는 비효율적 일상과 눈에 띄게 대비되기 때문에 효율적 일상은 더욱 티가 나고 빛이 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티 안 나는 집안일을 군말 없이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효율적인 일 몇 가지를 더 찾아내어 내 삶을 좀 더 재미있고, 신나게 살아가 볼 예정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참 경이로워서 효율적이든 비효율적이든 상관없이 감사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