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완벽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완벽해지려는 어리석은 몸부림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으로,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이르는 말, 완벽.
나는 '완벽'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어감도 뜻도 좋아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100점'이라는 점수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서 어떻게 해서든 그 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100점에 가까운 99점은 어디까지나 99점이지 100점이 아니므로, 만족할 수 없었.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여러 경험이 쌓여가며 100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100점에서 98점, 95점, 92점 그러다 90점으로 내 만족의 기준을 조금씩 낮춰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완벽을 구하는 습성은 남아있어서 완벽하지 못할 때는 이내 불안해지곤 했다.
특히 논문을 쓸 때, 나의 완벽할 수 없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고, 이내 불편해진다.
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커다란 화면에 내 논문을 띄워놓고 발표하는 도중에 심각한 오타를 발견하여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을 만큼 창피했던 적도 있고, 어느 날은 소파에 누워서 내 논문을 슬슬 읽어보다가 어처구니없는 오타에 놀라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듯 일어난 적도 있다. 분명히 그때는 없었던 오타가 왜 이제 나타난 거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일이었다.
세미나 시간, 커다란 화면으로 내 논문에 어이없는 오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에 이제 절대로 오타를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마음가짐을 먹었다. 소논문의 제목, 국문 초록, 본문, 참고문헌, 영문초록으로 이루어진 약 25페이지 정도의 글을 수없이 확인했다. 단어의 철자나 띄어쓰기는 물론이며 쉼표나 마침표, 따옴표와 같은 구두점, 단어와 괄호 사이에 한 칸을 띄었는지 안 띄었는지를 모니터로 확인하고, 출력하여 인쇄물로 확인했다. 내 두뇌는 오타도 바른 단어라고 자동적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지인의 두뇌를 빌려보기로 했다. 그에게 내 논문을 출력해서 보내주고, 대신 읽어달라고 말하며 오타를 하나 발견할 때마다 얼마씩 돈을 주겠다면서 부탁을 한 적도 있다. 나, 지인, 또 다른 지인 이렇게 셋이 달라붙어 오타를 확인하여도, 다음번에 읽어보면 또 오타가 보인다. 한글 파일에 '오타 생성기'를 누군가 악의적으로 심어놓은 것 아닌가 의심한적도 있다.
나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는 논문을 수정할 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논문 최종', '논문 진짜 최종', '논문 진짜 최 최종'이라는 이름의 파일이 점점 쌓여갔다. 지겨운 오타와의 싸움을 열 번 정도 하다가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잘 떠지지 않고, 본문 내용을 외울 정도가 되면, 이젠 그만 논문 최종본을 넘길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거의 토할 때까지 글을 읽고, '진심 마지막 논문 최 최종본'을 학회에 제출하고 나서 '이제 내가 다시는 논문을 쓰나 봐라' 하면서 다짐을 하곤 했다.
부족한 머리로 몇 편의 논문과 글을 쓰며,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오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완벽'을 추구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이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가질 수 있는 한계가 밑바탕이 되어 필연적으로 실수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다년간의 경험과 배움을 바탕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대 매력이 바로 '결점, 오타, 실수'라고 결론을 지었다.
예전에는 내 논문의 오타를 허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의 논문을 읽으면서도 오타를 발견한 순간 그다음부터 딱 읽기 싫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 귀여워라!' 하며 딱딱한 이론과 설명으로 가득한 논문 속에 '오타의 신'이 숨겨놓은 '기분 좋은 유머 코드' 정도로 생각하며 빙긋 웃어 보이려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또 혹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최대한 줄여보면서 나의 남은 생을 좀 더 마음 편안하게 살아보고 싶다. '오타 강박'만 내려놓아도 인생이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내일은 나에게 하루가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데, 오늘이라도 반드시 행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흠 있는 구슬'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라는 매력에 푹 빠져서, 완벽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즐기는 오늘 하루를 보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글의 오타 확인은 딱 한 번.... 아니 두.... 세 번 만 하고 절대로 안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