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오후 아이 킥보드도 태워 줄 겸 해서 공원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슬슬 동네 마트에 들렀다. 처음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사과주스를 사줄까 하다가, 깻잎 무침도 맛있어 보여서 사고, 아이들이 잘 먹는 파래김도 떨어져서 그것도 하나 담았다. 처음부터 장을 볼 것을 계획하고 마트에 간 것이 아니었기에, 사고 싶은 많은 것이 있었으나 절제하고 조금만 샀다. 그런데 계산하면서 보니 이벤트 코너에서 800g짜리 닭을 두 팩에 9,900원으로 팔고 있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육질을 가지고 있어 우리 가족이 모두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두 팩을 산다고 해도 닭볶음탕, 찜닭, 치킨 데리야키 등으로 요리하여 금방 다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벤트 상품을 발견했을 때, 이미 카드 결제도 다 했고 들고 갈 손도 부족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살까 말까 했던 그 닭고기 두 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둥둥 떠다녔다.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마침, 퇴근길 마트에서 건전지를 사고 있다는 남편에게 얼른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후, 남편으로부터 두 단어의 메시지가 왔다.
'닭 매진!'
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20여 분 전까지만 해도 수북하게 쌓아놓고 팔던 닭이 그 새 매진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발 빠르게 달려가 닭고기 두 팩을 얼른 낚아 채지 않았던 내 탓이다. 아, 그러니까 눈앞에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며 이리 재고, 저리 재다 잡지 않으면 이렇게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주부 9단이 되려면 이렇게 갈길이 멀다.
내가 '1+1 닭고기'는 놓쳐 버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사에 그런 것은 아니다. 기회를 잘 잡았던 경험도 종종 있다. 그중에서 내가 올해 가장 잘한 선택은 1월 첫째 주,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내 방식대로 삽니다',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의 저자 남인숙 작가님의 '책 쓰기 아카데미' 온라인 강좌를 수강한 것이다.
올해를 시작하며, 나는 중학생이 되는 다홍이를 보낼 새로운 영어학원, 동동이를 보낼 언어치료 센터를 열심히 알아보고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홍이도 동동이도 자신에 잘 맞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됐다. 남편도 회사 내에서 진행하는 새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의욕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바쁘게 자기 자신의 성장을 향해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만 빼고.
가족들이 각자의 인생 학교로 달려간, 어느 조용하고 한가로운 오후였다. 내 마음에부터 들려오는 작은 소리가 있었다. 나는 내 안의 나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런데 너는 뭐 배우고 싶은 거 없니?'
'글쎄. 나도 배우고 성장할 거야. 그런데 뭘 배우면 좋을까?'
'너 예전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응. 그랬지.'
'혹시 포기했어?'
'아니...'
'작가가 되려면 뭘 먼저 해야 할까?'
'무엇을 새로 배울까?'라며 시작된 나의 질문 끝에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답에 이르렀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한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글쓰기 강좌가 나타났다. 망설이지 않고 수강신청을 한 후에 첫째 아이가 학원에 간 시간,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거나 낮잠을 자고 있는 시간에 틈틈이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부지런히 필기하며, 매 강의마다 주어지는 숙제도 하고, 복습을 하기 위해 강좌를 두 번씩 들었다. 그렇게 나는 소중한 시간을 매우 가치 있게 사용했다. 이러다가 내가 정말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머리카락 한 올 만한 희망이 생겼고, 그 작고 가녀린 희망만으로도 행복했다.
자연스럽게 마법처럼 한 인터넷 카페에서 진행되는 '100일 글쓰기 챌린지' 소식도 알게 되었고, 이번에도 재빠르게 참가 신청을 했다. 글쓰기 온라인 강좌를 신청하고 수강하여 보람과 기쁨을 경험해 보았기에, '100일 글쓰기'는 좀 더 쉽고 빠르게 실천할 수 있었다. 100일간 하루에 한편씩 글을 쓰는 도전을 했고, 간신히 글을 써 나갔고,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 미루지 않고 선택하고, 실행한 덕분에 나는 어느덧 매일 '쓰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동안 써 놓은 자식과 같은 소중한 글 113편의 제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만기 된 적금을 바라보는 듯 흐뭇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아쉬움이 없다. 빠른 선택과 맹렬한 집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것이 세일 상품이던, 배움의 기회이던,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이던, 이거다, 이때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고민을 멈출 것이다. 그리고 과감하고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내일 마트에 혹시 닭고기 할인 행사를 한다면, 그때는 주저 않고 집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매콤하고 달달하고 짭짤한, 당면과 채소가 잔뜩 들어간 특제 찜닭을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