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그런 날이 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관없이 다 눈에 거슬리고 꼴 보기 싫은 그런 날이 있다. 어느 날은 세상이 마구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빛깔이다가 또 어느 날은 이렇게 만사가 희뿌옇고, 무기력하다. 중력이 오직 나에게만 심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자꾸만 눕고 싶고, 늘어지곤 한다. 그런데 꼭 그런 날은 온 가족이 마음을 합해 내 속을 뒤집기도 한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오후 4시까지 수학학원에 가기 위해서는 이 시간쯤엔 버스를 타야 함에도 휴대폰과 물아일체가 되어 방바닥에 마치 녹은 슬라임처럼 붙어있는 딸 다홍이도, 그녀의 옷가지와 책과 온갖 프린트물이 뒤섞여 엉망진창인 딸의 방도 참아주기가 어려웠다. 중학생 딸이 저러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화가 치밀어서 그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렇게 하려면 다 그만둬!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시는 데, 네 학원비가 얼만데'류의 생색이 가득한 말을 덫붙이면서 말이다.
마음속 악마의 '지금은 좀 화를 내도 돼. 저렇게 내버려 두면 애가 뭐가 되겠어? 어서 소리를 질러!'라는 교활한 속삭임에 난 그만 지고 말았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SNS에 들어가서 친구들의 글과 사진을 보았다. 오늘따라 그들의 이야기가 온통 뻔한 자기 자랑으로 느껴져서 눈에 가시처럼 거슬렸다. 글 중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프로젝트, 사업계획서 작성, 대학 강의, 기업체 강의로 인한 육체적 소진으로 진지하게 나의 커리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라는 친구가 있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두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어 나의 커리어 관리 따위는 생각도 못하고 있어 조바심이 나던 차에, 그의 눈물겨운 호소는 '교묘한 자기 자랑'이라고만 느껴졌다. 영혼을 갉아먹는 최고 공신, '남과 비교하기'가 자동으로 되었다.
'아니, 그렇게 힘들면 다 그만두시면 되지 무슨 걱정인지? 그 프로젝트 저한테 주시던가요!'
또 다른 포스트에는 그동안 숨겨왔던 막내아들을 공개한다면서 어느 키 크고 잘생긴 20대 청년과 사진을 찍은 기업가 친구의 글도 있었다. 사실 그 숨겨왔던 셋째 아들의 정체는 자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후원해 오던 어느 보육원의 아이였고, 지금 이렇게 멋지게 장성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오랫동안 선한 마음으로 보육원의 아이를 후원한 기업가의 훌륭한 인품에 대해서 난 이렇게 생각했다.
'저렇게 사진으로 막 얼굴 공개해도 되는 거야? 초상권 침해 아닌가? 저 청년에게 허락은 받은 거야?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는데.. 아!! 뭐지? 저 은근한 자랑질은?'
그는 자신의 일상을 SNS에 공유한 것뿐이었는데, 난 잔뜩 삐딱한 시선으로 그분의 공로를 폄훼하고 평가했다. 꼬인 시선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흉본 후에는 여지없이 자책감이 따라오며 나의 찌질함은 더욱 부각된다. 오늘은 내 마음속에 악마들이 하나같이 일어나 나의 열등감과 쫌스러움의 종합세트를 여실하게 밝혀주느라 바쁘다.
그렇게 아침부터 하루 종일 신경질도 내고, 짜증도 내느라 지옥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희미하고, 고요하게 속삭여주는 음성이 있었다. 나의 보잘것없고 남루한 마음에 실망하고, 절망하고, 그러다 보니 손가락을 하나 까딱하기 싫은 그런 날에, 내 마음속 작은 천사가 내게 나지막하게 한마디 했다.
'괜찮아. 일단 설거지를 해보자.'
'What? 설거지? 설거지..... 그래 일단 설거지나 한번 해보자.'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르고 인공지능 스피커, 클로바에게 평상시 즐겨 듣는 음악을 부탁했다. '클로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들려줘!!'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오늘 하루 종일 설거지를 안 해 잔뜩 쌓인 접시들을 보니 고무장갑을 벗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일단 작은 컵부터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접시, 그릇, 숟가락과 젓가락, 칼, 가위와 같은 주방용품에 거품을 가득 묻혀 정성껏 애벌 설거지를 하고, 깨끗한 물에 뽀독뽀독 소리가 날 정도로 여러 번 헹군 후 물기를 탁탁 털어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싱크대를 한번 비누 거품으로 빡빡 닦고, 물기를 싹 제거했더니 신기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 마음속 악마들이 비눗물에 씻겨 다 나가버린 걸까? 이제는 내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잘했어. 너는 설거지도 참 잘해. 수고했어. 그럼 얌전하게 혼자서 잘 놀고 있는 아들에게 사과를 한번 깎아줄까?'
'좋아. 완벽하게 사과를 깎아보겠어!'
정성껏 동동이에게 사과를 깎아주었다. 그리고 동동이에게 엄마 한 입만 달라고 했다. 아이가 내 입에 연이어 사과 조각을 두 개나 넣어주었다. 동동이가 준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더니 아삭아삭한 식감과 함께 새콤하고 달콤한 사과의 맛이 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기분이 좋아진 나에게 동동이가 내 볼에 뽀뽀까지 쪽 하는 것 아닌가. 귀여운 아들의 뽀뽀까지 받은 이상, 이제 더 이상 꼬마 악마 따위는 내 마음을 괴롭힐 수 없었다.
그렇다. 이유 없이 화가 나고, 미움, 질투, 원망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청소나 설거지와 같은 정리 정돈이 효과적이다. 내 신경을 거스리는 지저분한 것을 소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너저분한 마음이 정리되는 경험을 자주 했다. 눈앞에 텅 빈 공간이 생기면서 마음에도 그만큼의 여유가 생기는 기분이다. 또 어떤 때는 달콤한 꿀 한 스푼을 입에 머금고 있기도 한다. 그러면 어느덧 마음이 안정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 든다.내면이 바스러지고 말 듯할 때 운 좋게 받는 아들의 뽀뽀는 꿀이나 초콜릿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천연 당분 그 자체이다.
하루를 살아가며 마음속에 선한 마음만 가득 차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손들어보라고 하면 아무도 못 들 것 같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를 조금 미워하고, 조금 질투했다고 해서 너무 크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속으로 그들을 미워하고 질투했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그렇지만 너무 오랫동안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 있으면 내가 알고, 더 나아가 가족이 알고, 내 주변 사람들까지 알게 된다.
이유 없이,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가라앉고, 신경질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주는 행동을 통해 마음속 작은 악마들을 하나둘씩 쫓아내는 게 좋겠다. 손쉽게 할 수 있는 청소나 설거지뿐 아니라 보고 싶은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서 대화를 나눠도 좋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옷장에 있던 옷을 꺼내어 입어보며 방구석 패션쇼를 해봐도 좋고, 아이와 요리를 해서 함께 나눠먹으며 육아의 기쁨을 누려도 좋겠다. 그렇게 나의 마음이 기뻐지는 작은 일들을 해보며, 오늘의 일상을 잘 살아나가면 그것으로 참 멋진 하루를 보낸 것이리라.
요즘 동동이가 나에게 자주 이렇게 말한다. 아이의 말을 기억하며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낯으로 저녁밥을 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