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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Dec 20. 2022

어떤 기다림-캐시미어 스커트

연말이다.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려 옷장과 신발장 문을 열었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려서 옷장과 신발장의 공간을 확보하고, 꼭 필요한 것은 갖추어 채워 넣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정리 정돈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연말을 맞이했다. 얼마 전에는 앵클부츠 한 켤레를 새로 장만했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신어온 짙은 회색 소가죽 앵클부츠가 있다. 발에 잘 맞아 편하고, 스커트, 바지를 입을 때도 모두 다 잘 어울려서 자주 신다 보니 그만 구두 코도 닳고, 구두 굽의 가죽이 벗겨지고, 지퍼 옆에 달린 금장 장식도 떨어져 버렸다. 구두 회사에 문의했더니, 수선이 가능하긴 하지만 굽 자체를 다 갈아야 하고, 금장 장식도 부품이 없어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그러면 비용이 꽤 많이 발생한다고 했다. 즉, '이제 그만 신고, 웬만하면 새로 하나 사시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베이지색 앵클부츠를 샀다. 굽은 5센티를 할지, 6센티를 할지 약간 고민하다가 더 나이가 들면 더 높은 굽을 못 신게 될 것 같아서 6센티로 샀다. 3일 정도 기다린 끝에 멋진 새 부츠가 도착했다. 

자, 새로운 부츠를 신고 기분 좋게 옷장을 열어보았는데, 뭐가 없다? 어울리는 스커트가 없다!! 베이지색 앵클부츠에 어울리는 오트밀 색상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캐시미어 스커트가 나는 없다. 슬픈 현실에 잠시나마 절망하던 나는 때 마침 단정하고 아름다운 펜슬 스커트를 일주일 동안 20% 세일에 한다는 광고를 접하고 말았다. 약간 망설이다가 결국 샀다. 어느 기사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가치가 월 340만 원은 족히 넘는다고 하는 것을 보았기에, 나의 고된 육아 및 가사 노동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약간 비싼 스커트를 한 벌 샀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택배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업체에서 상품을 발송했다는 문자를 나에게 보내왔으니 이제 3일 정도 지나면 내 손안에 따끈따끈한 신상 스커트가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어제 아직 도착도 하지 않은 그 스커트가 반송되어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담당 택배기사님의 문자를 받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이렇게 황당하기는 난생 처음인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택배 기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아보았더니, 나의 스커트를 가져오던 기사님이 '주소 오류'가 났다는 이유로, 즉 우리 집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에게 전화 연락도 하지 않고 곧장 옷을 반품 처리를 해버렸던 것이다. 대체 왜 그러셨는지 알 수 없지만, 담당 기사님은 택배의 소재를 애타게 찾고 있던 나에게 배송료를 돌려주실 것이니, 업체에 연락하여 재배송을 요청하라고 하셨다. 자신의 실수라고 사과도 하셨다. 예상치 않은 기다림에 짜증이 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은 벌어져 버린 것을.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나는 기사님에게 배송료를 돌려주셔서 감사하고, 사과를 해주신 것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쇼핑몰에 알아보니 반송되어 쇼핑몰로 되돌아간 그 옷을 재발송해 주어 나에게 도착하는 데에는 약 2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예 주문을 취소를 하던지, 옷을 기다리든지 하라고 했다. 갑자기 모종의 오기가 생겼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귀하니까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며, 차분하게 기다릴것이다.

약간 타이트한 디자인의 스커트이므로 2주 동안 다이어트를 해서 1킬로그램 정도 살을 빼고 입으면 좀 더 맵시가 날 것이다.  예쁘게 차려 입고, 내가 참 좋아하는 시내의 서점에 갈 것이다. 그곳에서 좋아하는 에세이집 한 권과 분홍색 형광펜 한 자루를 산 다음, 카페에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초콜릿 케이크를 한 조각 천천히 먹으며 그 책을 끝까지 다 읽을 것이다. 밑줄 그으며 정독할 것이다. 아 참! 중요한 것이 있는데, 새 옷을 입고 새 책을 읽을 때는 잠깐 다리를 꼰 자세로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책장을 넘겨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새 옷 입는 맛이 난다고나 할까. 

나에게 이런 우아한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준 스커트에 감사하고, 뜻하지 않던 오랜 기다림을 선물해 준 택배기사님께도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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