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모성애
어느 때부터인가 육아 서적 혹은 자녀교육 서적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읽다 보면 뭐랄까.. 내가 책에게 혼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에게도 '엄마는 반드시 이러해야 하고, 자식은 저러해야 한다.'라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으며, 밑줄 쳐가며, 필사까지 하며 마음속에 품고 다녔던 시절도 있었다. 소아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아이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킨 엄마, 그리고 교육학자인 저자들의 조언을 따라 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데 어쩐지 아무리 애를 써 따라 해 봐도, 뭔가 어색했다. 아이도 나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비슷한 현상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말과 저책의 저자 말이 각자 다를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지진이 나는 것 같았다. 엄마도 자식도 다 천차만별, 제각각이라 나에게 딱 맞고, 유효한 의사의 처방전 같은 책을 찾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모두 다른 기질과 유전자를 가지고 자라듯, 그들을 키우는 어머니도 각기 다른 모양과 형태의 모성애를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모성을 옳다 혹은 그르다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이다. '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는 가장 중요한 명제 하에, 어머니들은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고 아이의 기질을 관찰하여 서로에게 가장 맞는 방식을 찾아 그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시행착오를 견뎌가다 마침내 성장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혀 다른 기질의 두 아이의 아이를 다른 방식으로 키운다. 기본 전제는 아이를 믿어주려 노력하고, 지지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첫째 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노력하고, 찾고, 도전하는 스타일이기에, 그런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밤을 새웠다. 부모님의 말씀에 토라는 것은 달아본 적 없이 순종적으로 자라며, 이 세상 걱정근심은 혼자 다하는 것처럼 조심조심 살아온 내가 아이에게 자율과 자유, 그에 따른 책임을 부여하며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딸은 아주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스스로 할 때, 즐거워했다. 그 애는 먹는 것, 입는 것, 공부하는 것, 발레나 춤을 배우는 것, 머리핀 하나까지 자신이 하나하나 선택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중1이 된 딸아이가 이제는(하다 하다) 연예 기획사에 찾아가 오디션까지 보고 와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와 남편은 그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사인을 해주었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광고와 드라마에서 보조출연자, 단역 배우로 지원하였고, 캐스팅되어 주말에 즐겁게 촬영을 하고 안전하게 내 품으로 돌아왔다.
내 친구는 이런 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연예계가 어떤 곳인데, 딸자식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말리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했다. 사건 사고가 비일비재한 곳에 총총 걸어가는 딸을 말리지 않는 나를 염려해 주었다. 내 친구는 만약 아들이 그렇게 배우나 아이돌을 하겠다고 하면 절대로 시킬 생각이 없다고, 길이 아니면 아예 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몇십 년 먼저 태어난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며칠 전에 큰 잘못을 저지른 아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는데, 당장은 아프더라도, 그것이 결국 아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둘은 앞으로도 각자의 방식과 노선에 따라 아이들을 키울 것이다. 누구 하나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나의 딸도, 내 친구의 아들도 각자 주어진 어머니에게서 일정 기간 양육을 받으면서 성장할 것이다. 어머니들은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어도, 아이들은 각자의 어머니에게 각기 다른 상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것이고, 어느 때가 되면 그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때까지 어머니의 역할은 책임감과 성실을 다해 끝까지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것이다. 나는 나의 딸이 단역 배우를 하며 불필요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기도해 주고, 스케줄을 관리해 주고, 계속 대화를 하면서 보호할 것이다. 내 친구도 때로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고, 때로는 꽉 끌어안아주면서 아들을 정성껏 양육할 것이다. 그리고 늦은 밤, 아이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최고의 엄마는 육아 서적 속, 육아 프로그램 속에 말하는 '이러이러한 엄마'가 이상적인 엄마가 아니다. 아이 곁에서 눈과 비를 대신 맞아주고, 혹은 같이 맞아주며 그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해 주는 바로 '나'이다. 그러니 자신감 갖자. 나만큼 내 새끼를 잘 키울 수 있는 엄마는 없다고 큰소리 한번 쳐보자. 그래도 된다. 핏덩이 아기를 이 만큼 키우느라 당신, 충분히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