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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예라 Apr 24. 2024

다시 글을 쓰며...

feat. 마흔둘에 겪은 성장통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더 이상 깊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치열하게 노력했던 순간들, 굳게 믿었던 신념이 와르르 무너지고, 부정당하며, 심장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의욕을 가지고 준비했던 사업도 미련 없이 그만두었고, 습관처럼 들어가 읽고 쓰고 했던 나의 사랑하는 '글'을 포기했다.  사업을 하려면 집중을 해야 하고, 글을 쓰려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집중력도, 눈만 뜨면 떠오르곤 했던 글감도 열심히 불던 비눗방울 마냥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럼 그렇지. 브런치 앱을 지우고, 자주 들어가던 글쓰기 카페에도 딱 접속을 멈추었다. 아참. 토요일 오후면 습관처럼 들르던 서점도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 내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시도 읽고, 마음이 촉촉해지는 에세이도 읽고, 서점 지하 1층에 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여러 사람들이 즐겁게 혹은 심각하게 나누던 이야기를 슬쩍슬쩍 엿들으며 다시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일도 그만두었다. 나를 위한 창작의 시간이 사치로 느껴 쳤고, 아무런 의욕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는 무슨 얼어 죽을 작가...'


대신 6년간 살던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이사를 가야 하겠다고 생각한 지 한 달 만에 새로운 집이 구해졌다. 이사를 하기 위해 열심히 짐을 꾸리고, 풀고, 정리하고,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정리정돈을 했다. 전공서적, 전집, 그릇, 쓰지 않는 가방, 더 이상 입지 않을 옷을 혼자서 순식간에 정리했다. 마치 정리 못해 한 맺힌 사람처럼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 

제주, 부산, 일본,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며, 새로운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풍경을 구경했다. 제주에서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을 보며, 부산에서 광안리 해변을 걸으며, 삿포로에서 아름다운 눈을 보며, 말레이시아의 한 호화로운 리조트에서 수영을 하며 오직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다. 깊은 생각, 의미 없는 논쟁,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잊기를, 잊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사 후, 어지러워진 집을 정리 정돈하며 나의 상실감과 실망과 슬픔이 가지런히 분리되고 정리되어 내 기억 어딘가에 아주 작게 저장되길 바랐다.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여행을 네 번씩이나 하며, 새로운 희망과 산뜻한 기분과 설렘 역시 차곡차곡 새로이 기억 속에 저장하고 싶었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질 때 꺼내 써야지..' 


그렇게 1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을 정리 정돈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용기가 생긴다. 다시 깊어질 생각,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그 표현을 위해 다양한 책을 찾아보고, 또 다른 이들의 글을 읽어볼 마음이 기적처럼 생겨내고 있다. 다행이다. 


지난 1년 전, 그리고 1년 간 내가 겪었던 일들은 그저 아픔과 슬픔과 상처로 끝나는 허무한 이벤트는 결코 아니었으리라. 여전히 어렸던 나를 좀 더 나답게, 좀 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킬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리라 믿는다. 완전히 잊은 줄 알았으나 결코 잊지 못했던 '글'을 다시 쓰며, 다시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이리라. 


You deser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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