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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un 15. 2016

[Movie] 너와 나의 성장통

<브루클린> 20160421 존 크로울리 作

                                                                                                              


15년째 제 곁을 지켜주는 쏘울메이트같은 친구에게서 이 영화를 추천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본 영화, <브루클린>.


CGV는 좌석 차등 요금제를 포함 해서 여러모로 참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각 지점마다 아트하우스를 운영하고 마이너한 영화를 상영한다는건 굉장히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소녀감성이 다소 부족하신 분이라면, "어머 저거 뭐야. 그냥 우유부단한 어장녀의 양다리 이야기 아니야?" 라생각하실 수도.


하지만 저처럼, 그리고 이 영화를 추천한 저의 쏘울메이트처럼 삶의 터전을 떠나 타지에서 공부를 하일을 하며 고민하고 갈등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의 어느 장면에선가, 단 한 장면이라도,

"맞아, 나도 저랬어!" 하는 장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브루클린의 주인공 에일리스는 아일랜드에서 취직을 위해 멀리 미국땅까지 온 어린 소녀입니다.

영화에서는  따뜻하면서 따분하고 지긋지긋하면서도 그리운, 고향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마을의 삶과

외롭지만 다이나믹한 뉴욕에서의 삶 사이에 선 20초반의 소녀의 갈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고 무섭고, 그래도 또다시 궁금한 에일리스의 모습에 열일곱살에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한 저의 모습이 겹쳐져서 이 영화에 더 애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외로운 뉴욕에서의 삶에 지쳐갈 때쯤, 먹고 일하고 자는 것 외에 "삶"이란 없을 것 같은 팍팍한 도시의 삶에 지쳐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이탈리아계의 이민가정 출신의 토니가 에일리스의 앞에 마법처럼 나타나 삶을 선물합니다.                                                                                                     


"믿어도 될까, 너무 성급하거나 경솔한 결정은 아닐까,
이렇게 내 꽃같은 청춘을, 사랑을, 인생을, 이 낯선 남자에게 줘도 되는걸까?"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인 중에도 여전히 에일리스의 마음은 뜨겁게 토니를 향해 달려갑니다.


스크린 바깥에서 지켜보는 저조차도 제발 토니가 사기꾼이었다던가 어리숙한 시골처녀가 이탈리아 카사노바에게 현혹된다던가 하는 그런 뻔한 반전의 이야기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더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그만 두겠습니다.


다만,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와 친구들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뉴욕의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에일리스의 모습에 제 모습이 겹쳐져, 그녀가 자랑스럽고 대견하고 또 마음이 아팠으니 글의 서두에도 밝혔듯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눈물을 흘리며 보실 수 있을만한 괜찮은 영화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한켠으로 미뤄두고 살던 엄마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에일리스처럼 내 곁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겠구나.



저는 열일곱에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대학에 들어가고선 줄곧 자취를 했습니다.

제가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는 고등학교에 가고싶다고 했을 때 저희 엄마는 내심 고등학교 입시 시험에 떨어지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아, 내딸이 지금 집을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구나, 하는걸 막연히 느꼈다고 해요.

이기적인 불효녀인 저는 그 마음을 다 알면서도 굳이굳이 기를 쓰고 을 떠나고 싶었고 대학에 지원할 때에도 부러 통학이 불가능한 곳을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외롭고 삭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싶은 반짝반짝 새로운 삶이,
우리집 저 바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때론 나혼자만 못난이 촌뜨기같은 기분을 느끼더라도 그곳에서 기를 쓰고 외롭고 아프게 나의 둥지를 틀고 삶을 개척해야만 할 것 같았거든요.

왜냐하면 저도 에일리스 처럼, 제가 나고자란,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 작고 평화롭고 숨막히는 우물 안을 벗어나고 싶은 어리석은 못난이 개구리였으니까요.


영화 브루클린의 에일리처럼 원피스 아래에 수영복을 차려입고 썬글라스를 쓰고, 낮에는 붐비는 백화점에서 진빠지게 일하고 저녁엔 야간학교에서 미래를 차곡차곡 준비하고, 밤이되면 브루클린 한켠에 우리 엄마도 언니도 본 적 없는 착하고 따뜻하고 낯선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져 평범하고 사랑넘치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야말로 제가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솔직히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나 거기나 저기나 다 사람사는 곳이고 꾸역꾸역 일에 치이다보면, 난 왜 무엇을 위해서?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일곱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에일리스의 그 아일랜드 고향의 길고 길고 길고 아름답고 아무도 없는 해변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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