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20160601 박찬욱 作
개봉일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온갖 홍보용 사진과 영상을 섭렵하다가, 개봉일에 퇴근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본 영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
원작 <핑거스미스>와의 비교라던가, 완성도라던가, 스토리의 구성이라던가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의 평이 이미 많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에 가장 친절하고 대중적이다, 하지만 그러다 산으로 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저는 취향이 그리 고매하지 못한 탓인지 충분히 흡족했습니다.
영화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하녀 숙희의 시선, 2부는 히데코 아가씨의 시선으로 같은 장면이 다르게 서술됩니다. 여기에서 반전이 한번 빵! 3부에선 1,2부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결말을 짓습니다. 여기에 두번째 반전이 빵!
원작 <핑거스미스>는 인물간의 속고 속이는 관계가 영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두시간 남짓의 영화에 그 모든 것을 담아내기엔 무리가 있지 않았을까 싶고, 그래서 영화는 원작 스토리의 절반을 뚝 떼어다가 새로운 결말로 마무리를 지은 것 같습니다. 선택과 집중.
한가지 인상깊은 점은, 영화 속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을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표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가씨의 유산을 노리는 사기꾼 백작과 변태성욕자 코우즈키의 속박에서 비롯된 긴장감은 있을지언정, 그 두사람이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조성된 갈등은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망측하게 여자들끼리!" vs "우리는 선입견을 넘어선 뜨거운 사랑이라구요!"
이 구도가 전혀 없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인정을 굳이 부르짖지 않았다는 점이요.
오히려 이성애보다 더욱더 세속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고매하고 진중한 사랑으로 포장해서는, 온갖 편견과 장애를 극복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또는 숭고하게 희생되는 그런 구도가 아니어서 좋았습니다. 숙희와 히데코가 그냥 사랑에 빠진 보통의 연인이어서 참 좋았습니다.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가까웠습니다.
저택에 갇혀 한번도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허락받지 못했던 히데코 아가씨와, 목구멍이 포도청인 척박한 삶에 사랑따위 사치였던 소매치기 숙희, 둘 모두에게 그건 첫사랑이었을 겁니다.
보고싶고 생각나고 상대가 다른이와 있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가 그래도 또 그리워지고,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났다가 웃음이 삐죽삐죽 새어나왔다가 하며 가슴 속 감정이 널뛰기를 하는 첫사랑.
열다섯살에 파티에서 만나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목숨을 걸었던 어리고 진실되고 어리석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도 풋풋하고 경솔하고 뜨겁고 위태로웠습니다.
개봉 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베드씬은 제 예상보다도 훨씬 수위가 높았지만, 그 둘의 뜨겁고 달뜬 사랑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습니다. 사랑과 욕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본능적인 감정에 이끌려 어설프고 뜨겁게 서로의 육체를, 사랑을, 쾌락을, '탐닉'하고 '발견'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영화 <아가씨>는원작 소설과 같이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더해지는 스토리에 방점을 둔 스릴러라기보다는, 난생 처음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해본 두 사람에 대한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지긋지긋하게 속박된 이 삶에서 날 꺼내줄 나의 구원자, 나의 원수, 나의 첫사랑
누구에게나 인생에 한 번은 있을 법한 그 사랑의 감정이 가득 담겨있어 저는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숙희 역의 신인배우 김태리씨는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기력으로도 미모로도 김민희씨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두번째 작품을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