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가 파라과이로 떠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래도 여전히 이번 주말에도 콜하면 만날 수 있을거란 느낌이 든다. 거리는 멀어졌으나 심리적 거리감이 없어서다. 세상이 좋아져 줌이나 카톡으로 언제든 연락을 할 수 있고 블로그 등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다.
만 5년 간은 직접 만나 말을 통해 교류했는데 근 1년 반 동안은 글로 서로를 마주한 시간이 더 많았다. 블로그 글을 통해 보는 SY는 더욱 진중하고 성실하다. 이 표현을 본 SY가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정기적으로 꾸준히 글을 올리는 것은 대단한 경지다. 글을 써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지, 여러 생각이 들어서 글로 옮기게 되는지 SY 스스로도 궁금해 했는데 둘 다 맞겠지만 전자의 확률이 높을 것 같다. SY가 올리는 글에는 단상들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내용이 공감도 되고 함께 생각해 보게 된다.
SY는 파라과이에 근무하면서 주변국인 칠레, 브라질, 콜롬비아 등도 여행하고 있는데 한 번에 갈 때마다 20일 정도로 오래 다녀오는 점도 신기하다. 얼마 전에는 콜롬비아를 다녀왔는데 남미를 혼자서! 트레킹도 하며! 다양하게 체험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참 용기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 싶다. 그래서인지 블로그 글에서 '스스로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닌지' 라고 고민할 때 놀랬었다. 각자의 관점이라는 게 있겠으나 현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고 주변국도 여행하고 새로운 근무 환경에서 다이내믹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보는 내 입장에서는 SY는전혀 멈추어 있지 않고 흐르고 있다.
SY가 '멈추어 있다' 고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은 집에 머무는 시간 정도라고나 할까. SY는 내가 닮고 싶었던 집순이 중에 한 명인데, 그녀는 어제 내게 명언을 남겼다.
'집순이의 조건은: 집에 있는 허투루 쓰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 입니다 ㅋㅋㅋ 집에서 아무 것도 안하는 그 순간을 즐겨야해요 ~.~'
ㅋㅋㅋㅋㅋ
SY는 각종 뮤직페스티벌, 여행지, 행사 등에 관한 정보에 빠삭하여 덕분에 나도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가장 닮고 싶은 점은 집에 가만히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가만히 있다' 는 표현은 말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일명 멍 때리기라고나 할까.
3년 전, 6개월 동안 상담을 받으며 내게 '신분 상승'이란 돈 그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즐길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돈에 욕망이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돈이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유가 선사하는 것은 삶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배제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즐길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기 싫은 직장 일에서 벗어나 여행을 간다든가, 자신과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물건과 시간을 선물할 수 있다거나.
어떤 이들은 기본적 생계만 유지되는 상황 속에서도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이들은 돈이 많이 있어도 삶을 즐길 줄 모른다. 여기서 삶을 즐긴다는 것은 내게 '현재 있는 공간에서 감정적으로 편안한/충만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돈을 벌기 위해 애쓴 시간 외에 여가 시간에도 늘 쫒기고 자기개발의 강박에 휩싸여 있는 이들은 내 기준에서는 삶을 즐기지 못하고 과업으로 여기고 있는 이들이다.
SY와 강릉 여행을 갔던 2023년 1월의 겨울, 그녀와 해변에 위치한 까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테라로사 까페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나는 그때 '삶을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시간을 이렇게도 보낼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서 '내가 그동안 해 본 모든 여행 중 가장 좋았어'라고 말했다. 20대 때의 뉴욕, 바르셀로나, 파리 여행이 아니라 30대 때의 강릉 여행에서 나는 '제일 좋음'을 느꼈다. 그 이유인 즉슨 '내가 이 공간과 시간을 즐기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색다른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느끼는 즐김도 좋지만 내 내면에서 가장 원하고 바랐던 순간은 외부로부터 큰 자극 없이도 한 장소에 머무르며 느끼는 편안함이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는 시간,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영양가 없는 시간(유튜브 시청 등)을 보낼 때면 '이렇게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올라왔는데 그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됐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우시장으로 이사를 갔는데 소를 사고 파는 시장이었다. 시내에서 먼 곳이었다. 하루에 버스가 3번만 지나다니는 곳. 등교할 때는 꼭 아빠가 차로 데려다 주어야 했던 곳.
거기서 엄마는 식당을 했다. 평일에는 축협 사람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구내 식당을 운영하고 우시장이 서는 장날마다 소 상인들에게 새벽부터 밥을 팔았다. 지금 내 나이의 엄마는 그 곳에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원들 점심을 준비하고 끝나면 아빠의 농사일을 돕기도 하고 스쿠터를 타고 시내에 가서 장을 봐왔다. 스쿠터를 타고 시내에 가는 그 시간이 엄마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 시간이었을 것이다. 5일에 한 번 장이 서고 나면 우시장 전체가 소똥과 톳밥, 흙으로 뒤덮혔는데 엄마는 그 넓은 공간을 빗자루 하나 들고 청소했다. 오물을 가득 채운 손수레를 끌고 가는 엄마의 모습을 창 밖으로 볼 때마다 엄마의 얇은 팔과 다리가 부러지지는 않을지 걱정됐다. 엄마가 진 수레의 무게가 내 어깨에까지 느껴졌다. 엄마의 그런 노동 덕분에 우리집은 우시장 안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다.
TV를 보다가도 창문 밖을 보면 엄마가 소똥을 치고 있었다. 나는 나가서 뭐라고 해야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어렸고, 좀 더 커서도 엄마는 우리에게 그런 일을 일절 시키지 않았다. 그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쳇바퀴 같은 삶을 견딜 수 있었는지, 재미없는 삶을 지나왔는지, 마른 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그렇게나 오래 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알 수가 없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대학을 가며 다른 지역으로 독립했지만 엄마는 그후로도 몇 년 더 그곳에서 살았다. 지금은 엄마 아빠도 본인 땅에 집을 짓고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문득 아침에 눈을 뜰 때, 밤에 잠들기 전, 불현듯 그 때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상담 때 유년 시절을 나누며 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해 주신 말씀은
'부모님의 희생으로 잘 자라났으니 이제 나의 행복을 돌봐주세요. 내가 원하는 욕구에 귀 기울이고 충족시켜 주세요. 나를 위해 돈을 쓰면서 죄책감이 아니라 기쁨을 느껴보세요. 나는 이제 무력했던 아이가 아니라 대안을 마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됐어요.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릴 부담감으로 자신을 짓누르지 말고 내가 행복해서 부모님도 행복하게 해 드리세요." 였다.
올해 초, 엄마와 통화를 나누며 그때의 기억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 나누었다.
"엄마, 우시장에서 엄마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더라고. 그 삶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가끔 잠 들기 전에 그때의 엄마 모습이 떠올라.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예쁜 옷도 입고 싶고, 화장품도 사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텐데... 얼마나 답답했어..? 자식도 여러 명 기르면서...."
눈물이 흘렀다. 그간 통화를 하다가 눈물이 핑돌아 울음을 삼킨 적은 있어도 소리내 운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말했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 그래도 그때 재미있었어. 네가 우리에게 희망을 줬잖아. 괜찮아. 슬퍼하지마~ 너희들이 잘 커주어서 너무 고마워."
너무나 밝은 목소리로 말해주는 엄마가 더 애틋하고 그 시절을 지나온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잘 자란 것에 대한 공을 엄마에게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감사했다.
내가 엄마에게 배운 것은 '성실하게 사는 것',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 , '정직하게 사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배우지 못한 것은 '쉬는 법'이었다. 엄마는 쉬는 법이 없었으므로.
어른이 되고서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됐다. 영어 공부를 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또다른 것을 배우고 경험 해야했다. 서울에서 주거 안정을 이루고 부모님께 넉넉한 지원을 해 드릴 수 있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철학차 한병철이 말하는 '자기 착취'가 이루어 져야 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는 목적도 '잘 발전시켜 직업화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엄마와 다른 방식으로 쉬는 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서울에서의 삶에 내게는 좋은 벗들, 좋은 선배들이 있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지 못해 엄마의 존재를 보냈다는 말이 있는데 그들은 각 시기에 나타나 유년 시절의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것들을 채워줬다. 그 중 SY는 쉼을 즐기는 법을 알려줬다. 길을 가다가 지는 노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모습, 학기 중 힘들 때도 다음 여행지를 알아보며 설레하는 모습, 예쁜 구름의 모습을 담는 모습, 가만히 창 밖을 응시하는 모습, 집에서 별 일 없이 빈둥대는 모습, 각종 페스티벌을 찾아 즐기는 모습 등. '별 일 없는 하루'에 감사한다는 SY의 말은 '별 일'을 찾아다니던 내게 새로운 관점을 알려줬다. 파라과이에 가 있는 동안에 쓰는 SY의 글들또한 내게 '삶을 좀 더 가볍게 사는' 교본이 되고 있다.
올해의 나는 좋은 이들을 만나고, 감정적 만족을 느낄만한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며 시간을 보내고, 내가 있는 공간을 내 마음에 들게 가꾸고, 좋아할만한 공간을 찾으며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오롯이 '내가 좋아하도록 두고' 있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것은 별로지만 집에 있는 시간도 많이 편안해 졌다.
다음 주에는 1년 반만에 다시 강릉에 간다. 두 번째 강릉 여행. 같은 장소를 누릴 나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또 어떻게 강릉을 즐기게 될까. 나이가 들어가며 좀 더 편안하게 쉼을 즐기게 된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참 좋다. 약 3년 동안 조금씩, 나는 나만의 신분상승을 이룬 것 같다. 경제적 계급으로서의 신분상승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서의 신분상승.
1년 간의 병휴직을 마치고 다시 마주한 서울의 여름,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이들과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지내고 있는 올해 여름은 인생의 걸음마를 다시 떼고 있는 것 같은 호시절이다.
2025.8. 作
https://brunch.co.kr/@beauty-warmth/19
▲ 2024.1. 作
■ 2023.1.강릉 테라로사 경포호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