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은 집순이입니다만...

by 쏭쏭

예전부터 신기하고 부러운 부류 중 하나는 집순이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사람. 핸드폰 하나만 있어도 시간이 잘 간다는 사람들. 나는 오전에는 잘 있다가도 오후에는 슬슬 밖으로 나가봐야 하는 사람으로서 막상 나가면 좋지만 집에만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이들은 한 공간에서만 필요한 자극을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동경하는 대상이다.


집순이 중에는 아무것도 안해도 평온한 류가 있는가하면 요리 등 취미에 재미를 느껴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들도 있다. 내 주변에는 두 부류 모두 있다.


내가 만약 집순이가 된다면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는 류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유형에 가까울 것이다. 이런 유형 중에는 반찬을 만들거나 일주일에 2-3번 화장실 청소를 한다거나 재봉틀을 돌리거나 '자기가 좋아해서 하는 행위'를 하며 시간이 잘 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기본적인 살림(청소 설거지 빨래)만 하는데도 하루가 다 간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요리나 청소를 하면 뿌듯하기는 하지만 자주하며 즐기는 사람은 아니므로 그들이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듣고 나서도 의문이 남는다. '저걸 하는데 시간이 잘 간다고?' ㅋㅋㅋ


그들을 여러 번 인터뷰하고 얻은 결론은 행위의 종류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그들은 집에 있으면서 뭔가 사부작사부작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까지는 집이 답답하여 나가고 싶은 욕구가 컸는데 공간이 넓어지고부터는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그렇다면 더 넓은 공간에 있게 되면 더욱 나가고 싶은 욕구가 줄어들 것인가? 실현돼 봐야 알 것 같다. (내가 아는 집순이들은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오늘은 집에서 '잘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무얼할까 하다가 자연스레 여러 일들을 했다.


일단 눈 떠서


1. 복숭아 2개와 계란 후라이 2개로 아침 식사 +

송님이 주신 드립백을 내려 마셨다.



2. 인센스 스틱을 피워 놓고 명상


인센스 향 피우는 것을 즐기지는 않는데 한 달에 한 번 쯤 피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피어오르고 있는 향의 모습이 오묘하고 아름답다.



3. 체크카드에 묻은 스티커 자국 떼기


gpt에게 물어보니 스티커 제거제 대신에 올리브유/핸드로션 등을 통해 자국을 없앨 수 있다길래

잘 안 쓰는 록시땅 핸드크림 시트러스 향을 카드에 쳐발쳐발하고 자국을 긁어냈다.



4. 아빠/엄마와 통화


아빠의 인터넷 관련 질문에 답변을 좀 드리고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식물/꽃 기르기는 즐기는데 화분이 아니라 직접 땅에 심어 기른다. 엄마는 예전부터 옷을 산다거나 화장품을 산다거나 자신을 위해 돈 쓰는 모습을 잘 보지 못했고 자식들에게도 그런 것을 사달라 요구한 적이 일절 없었는데 언젠가부터 엄마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부터는 자신을 위해 돈을 잘 쓰지 않는 게 마음 아프기도 했었다. 그런 엄마가 작년부터 유일하게 대리구입을 요청하는 대상이 있었는데 바로 식물. 최근에 요청한 식물은 대구 수목원에서 기르고 있는 울릉도 희귀종 '섬시옥'이었다. 이틀 전, 근 1년 반 만에 엄마가 "섬시호라는 꽃을 사주세요"라고 가족카톡방에 올렸다. 얼른 검색해 보니 모종은 딱 한 군데서만 판매하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주문해 드렸다. 섬시호가 잘 도착했는지 묻고, 엄마가 보내준 한우로 카레를 만들어 먹을 예정이라는 말을 나누고 끊었다.



5. 음악 감상


송님이 알려주신 조성진의 연주곡 '죽은 왕비를 위한 파반느'를 듣기 위해 백만년만에 소니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냈다. 2016년 제품인데 역시 전자제품은 좋은 것을 사야한다. 추천 해 주신 음악을 먼저 감상하고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었다. 조성진 버전, 선우예권 버전, 라흐마니노프 본인 버전 등 여러 버전을 비교하며 들으니 꿀잼이었다. 라흐마니노프 곡이야 워낙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곡이라 예전에도 몇 번 들었지만 감흥이 없었는데 다시 들으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중 조성진 버전이 가장 힘있고 마음에 들었다.


나는 본래 피아노 곡보다는 첼로/비올라/바이올린 연주곡을 더 좋아하는데 이참에 좋아하는 비탈리의 샤콘느,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쇼팽의 녹턴 in C# Minor, 헝가리 무곡 등을 이어 들었다. 시간이 잘도 갔다.



5. 점심 식사/언니와 통화


좋아하는 까페에 가서 오랜만에 아몬드 크루아상과 밀크티를 마실 예정이었으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이 미뤄진 관계로 집에서 어제 1+1으로 사놓은 베이글과 단백질 음료를 먹었다.


대구에 사는 언니가 다음 주 자유부인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6. 외출 : 서울시립사진관


오후가 되니 슬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근처에 있는 '서울시립사진관'에 다녀왔다. 노감흥. 건물자체는 멋있고 사람들도 힙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싶었는데 다행히 아직 진행되고 있었다. 잠시 들었는데 노잼. 가기 전에 아쉬워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너무 호러물 같이 나와 나혼자 보기로.



6. 민생회복 소비 추가: 잠옷 구매와 식물 들이기


필요는 하나 딱히 없어도 큰 불편은 없었던, 그러나 갖고 싶었던 잠옷과 식물을 구입했다. 여름이 되니 잠옷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 본래 내 취향은 아닌 '리본이 달리고 캐릭터가 있는 잠옷'을 구입했다. 일종의 도전이랄까ㅋㅋ


식물 가게는 힙한 식물 가게에 갈까하다가 집 근처에 소박하면서도 제법 종류가 다양한 가게에 갔다.


"제가 식물을 자꾸 죽여서요... 오랜만에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은데 잘 죽지 않는 식물 있을까요?"


좀 더 정확한 질문은 '잘 죽여지지 않는 식물이 있을까요?' 일 것이다. ㅋㅋ


어머님께서 고무나무/행운목/ 기타 이름이 기억이 안나는 여러 식물을 추천하셨다. 집은 일주일 이상 비우는 경우가 있으니 최소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줘도 되는 아이들로.


물을 얼마만에 줘야하는지, 베란다에 둬도 되는지, 분갈이는 언제 해야하는지 여러 질문들에 살뜰히 대답해 주셨다.


"그런데 어제는 다른 분이 계셨는데 혹시 사장님이실까요?"

"아, 우리 아이에요. 걔가 실질적인 사장이예요 : )"


이름을 아직 외우지 못한 파인애플 같은 식물도 데려왔다.


"파인애플 쟤는 파인애플 부분도 물에 담가줘야 하나요?"

"아니요. 파인애플 부분은 물을 싫어해서 머리카락 있는 부분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물에 푹 담궈주세요."


고객 맞춤 설명을 해 주시는 어머님ㅋㅋㅋ


집에 분갈이 할 화분도, 받침도, 흙도 일체 없기 때문에 화분/흙/받침도 사야하나 잠시 고민했는데

받침은 마지막에 서비스로 주시고


"화분은, 일단 사지말고 키워보시고 가을 쯤 분갈이 할 때 사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라고 말씀해 주셨다.

"잘 키워보고 취미가 붙으면 또 올게요: )"

"네, 키우는 방법 생각 안나시면 사진 찍어오시면 다시 알려드릴게요"


-35000원 식물

-12000원 잠옷


6. 일기 쓰기 : 지금하고 있음


7. 저녁 만들기


감자와 당근 사오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에 고기와 양파만 넣은 카레를 만들어 저녁으로 먹을 것이다. ㅋㅋ


8. 온라인 명상 모임/야구,유튜브시청/청소/설거지/매트운동 등



반나절 집순이 되기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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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 식물: 플랜테리어 사진에 많이 나오는 식물

본래 이름 : 틸란드시아


"손님~머리가 기시네요. 첫 방문이시니 기장 추가는 빼 드릴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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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와 행운목


산초 : 어린잎과 열매는 식용

* 파리, 모기, 개미 등 해충들이 산초향을 싫어하므로 퇴치 효과가 있다.

* (동의보감)에는 '눈을 맑게 하고 몸을 따뜻이 하며 한습하여 팔다리가 저리고 육부가 찬증상과 치통을 다스리고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며 소변을 조절한다고 한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저런 효과 있게 해 주세여


2025.8.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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