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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비...

인생서적

by 박미라

비가...
추석 연휴부터 3주일 넘게 비가 내렸다. 같은 크기와 같은 세기로 하염없이...
하늘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기우제'까지 지낼 정도로 안 오던 비가, 10월에 긴 우기를 맞은 듯, 애달픈 사연이라도 있는 듯, 줄줄 정처 없이 흩날리고 있다. 하늘은 물을 담아 두지는 못 하나 보다. 물이 넘치면 서슴없이 아래로 방류하는데, 그것이 비, 이던가? 비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폭포수인가? 우기 또한 가뭄처럼 지나가리라, 믿으면서 전에 없던 생각을 하게 된다.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물에 흠씬 젖은 하늘을 보며, 평소 좋아하는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을 듣는다. 흐린 날, 비 오는 날 참으로 어울리는 곡이다. 오늘따라 노랫말에 더욱 감탄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가사다. 마음속에 비대해지고 있는 욕심을 비우라고 경고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은 원래 누구나 외로운 것이니 슬퍼마라, 고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연륜과 철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쓸쓸하지만 따뜻하고 고독하지만 위로가 충만하다. 들을 때마다 절절한 외로움을 느끼게 다, 음악이 끝나면서 모두 거두어 가는 이 곡의 가사는 한 권의 '인생 서적 ' 같다.




마침내 해가 오랜 칩거에서 돌아왔다. 눈 비비고 기지개 켜며 동굴 밖으로 나왔다. 구름과 빗속에 숨어서 본연의 임무를 유기하더니 이제야 나타났다. 눈이 부셔서 하늘을,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오늘처럼 빛나는 태양을 거의 한 달 만에 만났다. 그래서인지 비에 익숙해진 동공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긴 나날 비와 함께 지내다 발생된 부작용이다. 인간의 적응력은 이런 것이구나~ 다시 한번 놀랐다.

이제 태양의 시간이 돌아왔으니, 언제 지난한 우기가 있었는지 조차 잊고, 언제 추위에 떨었는지도 잊고, 새로운 변화에 쉽게 다가설 것이다. 씩씩하게 걸어 따뜻한 세상으로 들어설 것이다. 내가 열심히 걸어 도달해야 할 곳은 '따뜻한 세상', '미소 짓는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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