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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시집(詩集)

by 박미라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속 미뉴엩. 겨울 햇살의 실타래처럼 빛이 되어 감미롭게 스며드는 작은 거실, 소파에 앉아 어떤 시인이 노래한 시집을 화집(畫集) 넘기듯 감상하고 있다. 그림처럼 선명하게 언어에 색감을 이입하여 글이 아닌 그림을 낭독하는 것 같은 컬러의 미학에 빠지며, '푸른 바다 마을'로 그 녀와 함께 걸어 들어갔다. 그 녀의 천재적 감성에 반하여 한없이 쪼그라드는 나의 교만은 쥐구멍을 찾아 던져 버렸다.

'그때도, 지금도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한 달째 머리가 하얗게 비어 흐름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니, 어느 방향으로든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책장 안, 40년 묵은 시집을 한 권 꺼냈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가끔 한 번씩 정리하고 버리는데, 이 책이 버림받지 않고 아직도 살아남아 내 손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마침내 만났다. 표지가 누렇게 떠 있고, 속지도 간절한 기다림으로 남루하다. 글씨는 모래알같이 작다. 짧고 단순한 삽화 하나 없다. 글자 크기는 조금 더 확대했으면 좋으련만... 시집에 여백의 여유까지 곁들여 인쇄할 수 있는 배려가, 그 당시에는 어려웠나 보다. 아쉬웠다. 하지만 그때는 그 시기만의 서글픈 사정이 있었으리라...


한 편, 한 편의 시는 나를 빨아들였다. 집중하면서 숙연해졌다. 감동으로 마음이 애달파졌다. 요즘 들어 자주 토라지고 심술부리는 뇌, 역시 평화와 기도의 시어(詩語)들을 물 먹는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아주 평범한 사물을 보고 시인은 어쩌면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작은 접시 하나에 인생을, 세상을, 우주를 담는 글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일까? 시인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거대한 규모인 것인가? 한없이 작아지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평소의 언행을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절실히 필요했던 각성과 배움의 시간이었다. 나의 전신에 붙어있는 오만과 거만, 편견, 편파, 편향성을 털어내고 싶었다. 하루, 이틀 털어서 사라질 먼지가 아니다. 재능도 없으면서 겸손마저 부재하고, 욕심만 가득한 나,를 어떻게 조하고 개선해야 하는 것일까?


그 녀의 시는 맑고, 순수했다. 곱고 맵씨 있었다. 시심은 싱싱하고 선량했다. 여전히 오염되기 전 상태로, 깨끗하고 정갈하게 보존되어 있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었다. 시인의 맑음과 순수함으로 마음을 세탁하고 싱싱한 정갈함으로 발도 닦았다. 시원하고 청정한 샘물을 양껏 들이켜니, 가슴에 고인 티끌까지 씻겨 내려가는 듯 후련하고, 막혔던 흐름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일종의 치유다. 책의 힘! 독서의 힘! 오래된 시집 한 권을 꺼내는 작은 동작이었을 뿐인데 기대 이상의 값진 소득을 얻어냈다. 내게 제대로 효험을 준 약 한 제가 되었다. 정체되어 있던 두뇌 속 무수한 미로 중 적어도 한, 두 개의 길은 뚫린 게 확실하다. 그만큼 나는 감탄했고 자극받았다. 오늘의 이 자극이 부디 오래 내 안에 머물러 주기를, 답답한 언어의 회로를 막힘없이 흘러 주기를 바란다.

"독서가 답이다." "책이 길이다."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깨달음을 길이 보존하고자 한다.


" 너와 나는 "

- 이 해 인 -


돌아도 끝없는

둥근 세상


너와 나는

밤낮을 같이하는

두 개의 시계바늘


네가 길면

나는 짧고

네가 짧으면

나는 길고


사랑으로 못 박히면

돌이킬 수 없네


서로를 받쳐 주는 원 안에

빛을 향해 눈뜨는

宿命의 반려


한순간도

쉴 틈이 없는

너와 나는


영원을 똑딱이는

두 개의 시계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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