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세월, 이 명제에 대한 사색을 하지 않고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다양한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 뇌졸중이 발병한 엄마 일을 겪으면서 불현듯 인생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이 심금을 울려 준다. 엄마의 식사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처절하고도 기막힌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 것인지, 삶에 대한 의문이 안 생기면 이상하다.
편마비 환자에게 이것은 난리 아우성이었다. 아비규환이었다.
아! 절규하고 싶었다.
배는 고프다. 먹어야 한다. 치아는 없다. 한 모금 뜨면 입가로 밥알과 물이 줄줄 흐른다. 나는 극도의 갈증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조금씩 천천히 밥을 떠 먹인다.
나의 엄마다. 가슴 아프다. 그에 대한 표현은 오로지 눈물이다. 마음의 우기, 그저 쉴 새 없이 터지려 하는 눈물의 문을 힘껏 밀어 닫는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진정한 애정으로 식사를 시켜 드릴 것인가. 인간이 늙고 병들었을 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장면을 눈앞에서 절절하게 보고 느끼고 있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라디오에서는 바흐의 음악,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점잖게, 가볍지 않게, 품격 있게 거실을 채우며 분위기를 조절하고 있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 있었는데 놓칠 뻔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을 받아들였다. 편안하다.... 이어서 흐르는 곡,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 1악장이다. 대박! 오케스트라의 부드러운 선율이 수액처럼 혈관을 타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