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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라 Oct 18. 2024

10월의 어느 푸르른 날에...

--- 때때로 화려한 외출

지난 5월, 베네룩스 여행 후 오랜만에 ‘나인플(모임명, 인원이 9명이어서 붙여진 이름)’ 친구들을 원주에서 만났다. 우리 아홉 명 친구들은 모두 영동권, 영서권, 경기지역권에 흩어져 살고 있으나 회동시에 참석률이 매우 높다. 자칭, 타칭 영동권이 본부,라고 하여 이 지역에서 가장 자주 만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친구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나들이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치악산 자락으로 찾아갔다.




스무 살, 같은 학과에서 만나 40년간 우정을 이어오고 있으니 서로 간에 거의 가족 같은 편안한 기류가 흐른다. 각자의 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 주고 영향도 받으면서, 하는 일 응원하고, 무엇보다 건강을 빌어주며 반가움의 표현은 끝이 없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인품이 선량하고 평범하며 튀는 사람이 없다. 배려심, 이타심도 강하다. 부자라고, 자식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서로의 발전에 기여한다. 미팅을 기약하고 나면 설레던 마음도 이구동성 고백한다. 모두가 나인플, 을 자랑으로 여기며 뿌듯해한다. 이러니 40년을 한결같이 함께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매우 이상적인 모임을 탄생시키고 성장시켰다. 자부심 가질만하다.


 점심식사하며 화기애애 담소 나누는 중, 두 친구가 아들 결혼 소식을 꺼내며 청첩 했다. 이 친구들은 모두 둘째 아이 결혼식이다. 결혼하게 되기까지의 에피소드가 코스모스 들판처럼 만개했고 웃음은 안개꽃처럼 부드럽게 음식점 내부를 장식했다. 경사스러운 소식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한 친구의 한숨과 함께 탄식의 소리가 들렸다. “우리 애들은 결혼할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니? 지인들이 아이들 결혼한다,는 소식만 들으면 너무 부러워.” 이어서 “동감”, 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두어 명 뒤를 따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아이들 결혼을 시작도 못한 친구가 반, 이다. 모두 자녀가 둘씩인데, 두 명 다 결혼시킨 친구와 한 명도 안 시킨 친구가 반, 반으로 나누어진다. 자녀들이 30대 중반에 진입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부럽다, 하는 말도 일리는 있는 듯하다. 요즘 젊은이들이 비혼주의자가 많고 실제로 결혼연령이 늦어지며 독신자도 많다더니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까운 친구들 아이들조차 항간에 회자되는 뉴스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조만간 짝을 구하는 모든 젊은이가 평생의 반려자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식사 후 음식점 정원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의자에 오손도손 앉아 차를 마셨다. 적당히 넓으면서도 아늑한 뜰을 둘러보니 따뜻하고 정다운 정서를 연출해 놓은 어떤 예술가의 수준 있는 솜씨를 눈치챌 수 있었다. 계절 중 봄 느낌을 물씬 심어 놓은 정원이었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나절 외출의 충분한 호강이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으니 그 분위기는 봄내음으로 더욱 향기로왔다. 음식점 상호도 <봄 내>였다.

가을의 멋진 날에 나는 무슨 봄 얘기를 하고 있는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곡이 문득 떠올라 유튜브로 노래를 틀어 놓으니 바야흐로 오늘은 10월 5일, 공기는 상큼하고 하늘은 높아 아름다운 가삿말이 우리들의 만남을 더욱 인상 깊게 하며 가슴속에 소녀적 감성의 훈풍이 분다.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한 곡이다. 매년 10월만 되면 반드시, 몇 번씩 들어야 하는 노래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명곡 중의 명곡이다. 이어서 한 친구가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을 후속곡으로 띄우고 있었다. 이 곡도 가요 중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가을이면 항상 듣고 싶은 노래로 손꼽힌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발전시켜 그 어느 그룹과 비교해도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우리만의 모임 ‘나인플’... 나이를 더해 가면서 점점 이 친구들의 건강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건강해야 앞으로도 변함없이 만나며 외로움, 허전함, 쓸쓸함, 상실감 등 비애의 감정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뀌니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일을 자연스럽게 미리 걱정하게 된다. 더 나이 들어 기동력 마저 없어지면 자식들 근처로 친구들이 떠나가지는 않을까, 그래서 더욱 고독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우려도 생긴다. 도움 되지 않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해도 감각적으로, 본능적으로 찾아오는 두려움이다.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지금 나는 삭제해야 할, 지워버려야 할 낙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적어도 90세까지 장수하며 나인플을 유지시키고 굳건히 지키게 될 것이니 지나치게 세월을 앞서 가지 말자.. 10월의 멋진 날에 어울리는 생각이 아니다. 행복한 날은 호사만 누리자. 즐거운 날은 웃음과 햇살만 만나자.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작정하고 떠난 금쪽같은 외출!!

욕심 없는 친구들과 소박한 담소, 감사한 음식, 착한 날씨와 변치 않는 가을의 노래...  

친숙한 존재가 점점 더 귀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생에 대한 당연한 도리이며 사랑이라고 푸른 하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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