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밤 11시, 비가 많이 내리고 있다. 비가 오는데도 더위는 가라앉지 않고 여전히 열대야인 듯 덥고 습하다. 올여름에는 장마와 태풍피해 겪지 않고 모두 무탈하게 조용히 잘 지나가기를 바란다.
주말에는 평소보다 TV 드라마를 많이 보게 된다. 주중보다 드라마가 더 많은 것도 이유이긴 하다. 비 때문일까? 오늘따라 드라마, 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하고 공포감을 조성한다. 사람을 잔인무도하게 살해하는 무자비한 내용이거나, 섬뜩할 만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여 악을 쓰듯 소리 지르고 가당치도 않은 이유로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엄한 사람들 괴롭히며 소름 돋게 하거나, 과거 가족을 음해한 가해자의 근처에서 원수 갚기 위해 칼을 갈며 때를 기다리는 복수극이거나 주로 그런 주제다. 수위가 좀 덜하면 가족 간의 오해와 질투, 시기로 인해 할퀴고 물어뜯어 처절하게 상처를 입힌다. 정상적인 정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심기가 심히 불편하고 예민해진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TV를 아무 생각 없이 쉬기 위해 시청한다. 멍하게 TV를 시청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악랄하고 잔인한 캐릭터가 여과 없이 등장, 활개 하니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고 없던 두통까지 생기게 한다. 사실 보통사람들 주변에 그렇게까지 못되고 섬뜩한 인물은 거의 없다. 편안히 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감동의 드라마 생산은 진정 안 되는 것일까?
작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극본을 쓰기에 ‘누가 누가 더욱 잔인하게, 더욱 자극적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나’ 경진대회 하듯이 그러한 주제의 극들만 쏟아내고 있단 말인가. 마치 그렇게 냉혹하고 무자비한 사람과 사건들이 중심이 되어 이 사회가 작동되고 있기라도 한 듯이... 이건 아니지 않은가.
비도 주룩주룩 오는데 무서운 드라마를 보다가 가슴 졸이며 불안에 떨었다. 그러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보던 것이라 계속 봐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심리는 또 무엇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름다운 장미를 그리며 어찌해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배경은 어떤 색으로 하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지, 나뭇잎은 왜 이렇게 묘사가 잘 안 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좋은 생각에 몰입하고 있다가 드라마로 어수선하고 어지러워졌다.
노년으로 갈수록 마음이 시끄러워지는 시청각 장치에는 모든 채널을 닫아야 한다. 점점 더 견디기 어렵다.
영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잔학무도한 장면으로 진흙탕이 되어 버렸고, 대중들의 접근성이 높은 TV 화면에까지 폭력성 내용물이 넘치게 흘러 들어와 드라마 애호가들은 점점 볼거리가 줄어드는 세상, 안타깝기 그지없다.
과거에는 기다려지는 드라마, 시청 후 감동의 눈물을 훔쳐내던 드라마가 종종 있었건만 이 시대에는 사라지는 동, 식물과 함께 멸종되었나 보다.
미디어가 생활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 잔학하고 현실감 떨어지는 내용으로 시청자를 현혹하고 착각하게 만드니
뉴스의 말세적인 사건 보도기사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심리가 나날이 삭막하고 피폐해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훈훈한 드라마의 귀환을 소망한다.
짧은 인생 따뜻하게 지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