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자의 보잘것없는 전시회를 축하해 주겠다고, 나의 주름 섞인 볼품없는 얼굴을 보겠다고 인천에서 망설임 없이 달려온 친구. 남미 여행 중, 내게 선물하려고 한국에서도 전시회를 했다는 그 지역 꿈 많은 작가의 멋진 그림을 구매해 오고, 취미로 홈패션을 배우면서 가방을 예쁘게 만들어 나를 위해 가지고 왔다는 친구. 여기까지 얘기해도 안구가 촉촉해지는데, 더 감동적인 것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시된 내 그림을 보고 마음으로 찍은 작품이 있으나 남들이 먼저 가지고 가고 남은 그림도 역시 ‘미라’이기 때문에 그림이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으며 조건 없이 사 주겠다 마음먹고 달려온 내 친구 은수기... 이 대목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그 순수하고 흠결 없는 무조건적 응원, 그 천진한 진심이 왜 이리 슬픈가!
거주하는 지역이 다르니 살면서 특별히 잘해 준 것도 없고, 반드시 챙겨야 할 경조사도 모르고 지내 왔으며, 혈육도 아니건만 마치 언니, 동생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의리를 그 애는 마음속에 키우고 있었다. 여고 때부터 그랬다. 대학시절에도 그랬다. 첫눈처럼 깨끗하고 푸른 하늘처럼 고매한 그 친구의 성정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기 좋은 맑은 물의 투명함,이었다. 저렇게 착하게 살아서 어찌하나? 저렇게 순진무구해서 어찌하나? 우려될 정도다.
중학교 교사생활 33년,
그 사이 친구의 성품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만한 풍랑의 세월이 흘렀으나 타고난 그것은 결코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바꾸지 않는다. 그 친구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손해 보는 선택을 서슴없이 한다. 그 또한 이타적 배려다. 본인의 얼굴도, 마음도, 옷차림도 절대 가식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가리지 않고, 덮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여 준다. 그런 모습이 거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숨김없는 속내의 노출이 어떤 이에게는 호구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된다. 이기적이거나 영악한 면이 1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선의의 이기는 항상 호신용으로 지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글을 통해 말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 친구는 두 딸을 훌륭히 성장시킨 엄마다. 엄마는 강하다, 고 했던가? 그러니 편파적이고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사회와 직면하여, 자신을 적절히 방어하며 강하게 잘 살아왔을 것이다. 내 염려는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틀림없다.
친구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있음으로 오염된 사회가 조금씩 정화되고 있다고 믿는다. 사람과 사람사이, 거짓과 질투와 비열한 사기의 홍수가 넘실대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옳은 길 꼿꼿하게 가는 친구 같은 의지의 인물들이 있음으로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최근에는 편찮으신 엄마 드리라고 과일 바구니를 보내왔다. 이미 작고하신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그리 했노라 하면서... 그 예상밖의 배려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나는 내 진심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기분 좋은 숙제다.
내 친구 은수기!
네가 내 친구여서 좋다.
네가 내 친구여서 자랑스럽다.